포기에 대하여
오늘은 질문을 하나 던져 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은 포기를 잘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절대로! 포기를 안 하는 편인가요? 될 때까지 한다, 이런 마음으로 대하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나요?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2주 동안 ‘포기’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을 했어요. 내 인생에서 ‘포기’해온 것들 그리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주에는 북토크가 있었어요. 마감하는 원고도 있었고 새로운 원고 검토해야 하는 등··· 혼자서 엄청 바쁜 척하면서 지내는 중이었지만, 북토크는 소중하니까요. 《그냥, 좋다는 말》 책의 북토크를 책방 건짐에서 진행했습니다. 늦은 오후, 삼삼오오 모여 예쁜 목소리의 작가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셨던 터라 목소리가 참 고왔던 우리 현정 님의 이야기에 모두들 빠져들고 말았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님의 원고 투고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였어요. 작가님이 무심코 하신 어떤 말이 제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고 말았지요.
작가님은 오랫동안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부산이 고향이지만 전혀 사투리를 쓰지 않으시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늘 방송반에서 생활했고 늘 진행자를 도맡아 해서 그랬는지 자연스레 아나운서를 꿈꾸었다고 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낙방에 또 낙방··· 여러 상황들이 맞물려 아나운서 시험 준비하던 걸 접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좋다는 말》에도 작가님의 이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가 있어요.
《가드를 올리고》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이 그림책을 만든 고정순 작가님은 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걸 반대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새벽에는 화실 청소를 하고 밤에는 직업 학교에 갔대요. 그리고 밤에 화실로 다시 돌아가 부족한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그렇게 첫 그림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3년,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그림책으로 데뷔를 하지요. 돈을 벌기 위해서 공장에서도 일하고 골프장에서도 일하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버둥거리면서 그림 그리는 게 좋아 밤마다 그림을 그렸다는 고정순 작가님의 이야기에 작가님은 자신의 이야기도 덧붙였어요. 자신은 너무 빨리 꿈이라는 링 위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고요. 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딘가에서 분명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그림책을 위해서 쓴 원고는 그냥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원고를 쓰고 나서 총 200곳이 넘는 곳에 원고 투고를 했대요. 그중 몇 곳에서는 이렇게 써서는 안 되니, 이러저러하게 고쳐서 내면 어떠냐는 피드백도 주셨다고 해요. 그래도 작가님은 포기할 수가 없었대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꼭 내 원고와 내 의도를 알아주는 출판사를 만날 때까지 투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당장 성과는 안 났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면서 훈수를 뒀지만, 나만의 색을 잃고 싶지는 않았대요. 그 후 원고를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280번 정도 투고를 했을 때, 아마도 그때 투고한 곳이 ‘느린서재’였겠죠?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원고를 수정하고 투고한 끝에 그 색이 좋다고 알아봐준 누군가를 만나게 된 작가님. 그날 모인 분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들으며 기함을 토했어요. 280번이라는 숫자에 놀라고, 퇴고 과정을 들으며 또 놀라고···. 그렇지만 그 긴 시간 끝에 우리는 결국 《그냥, 좋다는 말》을 만나게 된 거죠.
안 된다고, 거절당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스크래치는 계속 생기지만, 다시 또 일어나서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즐겁게 그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거기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 들었던 비난과 충고는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죠.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역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사실 요즘 암울한 생각들을 많이 했거든요. 책을 만드는 일은 즐겁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숫자 계산을 하다 보면 가끔은 막막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작가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라고 저를 꾸짖었습니다. 200권까지는 아니더라도 100권까지는 내봐야, 할 때까지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느린서재의 색이 선명해지려면 100권, 아니 적어도 50권까지 내보면 알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북토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했습니다. 그리고 비장한 마음으로 작가님에게 카톡을 보냈지요.
‘집념의 여인인 작가님, 저도 끝까지 한 번 해볼게요’라고요.
살면서 포기한 일들은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들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생각을 했습니다. 잠깐 쉬고 있는 것일 뿐, 포기한 건 아니다, 싶은 것들을요. 생각해보니 저는 계란말이를 정말 못 만들었어요. 요똥인 저는 결혼하고 나서 계란말이를 만들다가 계란이 도무지 말아지지 않아서 그냥 다 허물어뜨리고 말아 오믈렛(?)으로 요리를 변경하곤 했어요. 적당한 순간에 계란물을 돌돌 말아야 잘 말아지는데 너무 일찍 말려고 하면 계란물이 찢어져버렸고, 너무 익은 다음에 말려고 하면 뻣뻣해서 말려지지가 않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계란말이지만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계란말이였어요. 그렇게 10년이 흐르니 지금은 계란말이도 척척 잘 말아낼 수 있는 지경이 되었어요. 적당하게 달구어진 프라이팬, 적당하게 야들하게 계란물이 익었을 때, 그때 돌돌돌 계란물을 말아봅니다. 그 사이 치즈도 적당하게 넣어주고요. 10년 전 계란말이 하나 만들지 못해 정체불명의 계란 요리를 만들던 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더니 ‘적당한 순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이 뉴스레터를 읽으시는 분들 모두, 오늘은 포기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그동안 포기해온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그게 자의였는지 혹은 타의였는지 하고 말이에요. 너무 쉽게 그만둔 건 아니었는지, 포기하고 나서도 아직 미련이 남은 건 아닌지. 혹은 미련 없이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제는 홀가분하다 이런 느낌일 수도 있을 거고요. 저는 정말 다 불태웠다··· 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함께 해주세요!😉
아마도 오늘 밤은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오르는 밤이 될 것만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