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무서웠어요
오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어쩐지 책 만드는 내용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많아지는 뉴스레터가 되는 듯하네요···!
5월이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모두들 5월,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5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5월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4월 말이 되면, 아 벌써 5월··· 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숨이 쉬어집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부부의날도 있습니다. 석가탄신일까지 있어서 쉬는 날이 정말 많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어느새 이렇게 되니 5월에는 해야 할 의무들만이 가득한 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마음이 좀 덜했지만(어버이날만 챙기면 되니···!) 아이를 낳고 나니 이 의무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5월입니다.
5월이 되면 솔직히 말해서, 아, 올해 5월 달에는 또 돈이 얼마나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년 5월에는 급격하게 지출이 치솟았던 경험이 배어 있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아껴야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늘 일어나는 소비들은 소비대로 있기에 아낀다고 해도 혁혁하게 아껴지지는 않더라고요. (아마도 제 가계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월에는 돈 나갈 일이 천지입니다. 양가 부모님에게 소소한 선물이라도 해야 하고, 어린이날에도 아이들을 위한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희 집 어린이들이 4월부터 무척 기대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에는 결혼식도 늘 있어 왔지요. 최근에는 결혼식을 갈 일이 전혀 없었는데, 남편 친구가 이번 5월에 첫(!)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돈 나갈 곳은 많고 돈 들어올 곳은 뻔한 5월입니다.
저는 5월에는 가끔, 아이가 없었을 때의 제 인생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을 때, 5월의 어린이날은 저에게 아무런 날도 아닌, 그저 빨간 날에 불과했거든요. 그냥 쉬는 날, 회사 안 가는 날, 유급으로 쉴 수 있는 좋은 날, 남편과 나, 둘 다 모두 쉬는 날··· 이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두 어린이를 키우고 있어서 선물을 두 개 준비해야 하는 날,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 그래서 엄마는 일을 할 수 없는 날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뭔가 극단적인 인생의 변화가 일어난 것만 같네요. 어린이날마다 당연하게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이들의 눈빛을 보고 있으며 마음이 살짝 무겁습니다. 작년에는 시크릿쥬쥬, 올해는 캐치티니핑 그리고 슬라임 혹은 레고···에 더불어 레고랜드를 이야기하는 어린이들.(아직 레고랜드에는 가보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아주 늦게, 그리고 운이 좋다면 제발제발 안 가고 싶은 곳이 레고랜드입니다.) 장난감의 나라는 지치지도 않고 무한확장을 합니다. 가끔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농담조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캐치티니핑인가 뭐시기 그 회사에 폭탄을 던지러 갈 거라고요. 여러분도 혹시 아시나요? 꾸레핑, 공주핑, 하츄핑, 청소핑, 메모핑··· 이 끊임없는 티니핑들을요. 아마 티니핑을 아신다면, 저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셨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을 해봅니다.
아이고, 사설이 길어졌네요. 아이가 있는 삶과, 아이가 없는 삶은 아주 아주 다른 차원의 세계 같아요. 예전에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을 때 한 출판사 대표님과 저자 그리고 마케터와 함께 밥을 먹을 일이 있었어요. 대표님은 결혼은 하셨지만 딩크족이셨습니다. 대표님 말고는 모두 애가 있었죠. 대화가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보니 어쩌다 핑크퐁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핑크퐁의 영상들, 핑크퐁의 새로운 콘텐츠, 아이들이 핑크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최근에 핑크퐁에서 만든 한글 노래와 동화 등등 무한증식하는 그들의 콘텐츠··· 핑크퐁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는데 대표님이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핑크퐁이 뭔가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음, 핑크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다가 ‘상어가족’ 노래와 영상을 만든 회사이고, 온갖 아이들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회사인데 정말 정말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설명을 드렸어요. 핑크퐁과 관련된 온갖 장난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요.
저는 사실 좀 놀랐습니다. 세상에는 핑크퐁을 모르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요. 나에게는 유명하지만 누군가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세계,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세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누구나 알고 있는 고유명사라고 생각했던 ‘핑크퐁’이 갑자기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핑크퐁 월드는 전 국민이 아는 세계가 아닌 애기 엄마만 아는 세계, 그렇게 대표님과 저의 세계가 그날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었습니다.
경험이라는 건 어떤 세계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인 듯합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이 존재하니까요. 티니핑을 몰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티니핑을 모르면 잘 살기는 좀 힘들 수도 있는 엄마의 세계에 진입하고 나니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떤 것을 어떻게 경험했느냐···로 인생이 채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세계는 회사원에서 프리랜서, 그리고 1인 출판사 운영 그,리,고 캐치티니핑의 세계로 접어든 듯하네요.
누군가에게 5월은 날씨 좋고 놀러가기 좋은 달일 수도 있고 쉬는 날이 많아서 좋은 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5월은 부담스러운 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올해 5월은 왜 유독 쉬는 날이 많다고 느껴지는지, 쉬는 틈틈이 일을 했지만 어쩐지 진도를 전혀 나가지 못한 느낌이 드는 5월이었습니다. 약간은 답답했던 5월이 지나고, 드디어 6월이 되자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오늘 뉴스레터에 책 만드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드디어 5월의 긴 터널을 지나왔다··· 라는 느낌으로 편지를 보내봅니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손원평, 《아몬드》, 창비
아래 사진은 하츄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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