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슬퍼하긴 일러요>의 수달 작가님 글이 도착했어요!
아파도 슬퍼도 미안해하지 않고 살아가자며, 언제나 저에게 웃음을 주는 수달 작가님의 유쾌 통쾌한 편지! 😉
안녕하세요.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를 쓴 수달입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느린서재의 황서미 작가님과 김혜원 작가님의 뉴스레터를 읽었습니다. 느린서재 대표님이 미모순으로 작가님들을 섭외하나 싶었는데요. 드디어 제가 그 편견을 깼습니다. 저를 보시는 분들은 저에게 왜 수달이냐고 묻기도 전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시곤 합니다. 수달처럼 생긴 얼굴 덕분입니다. 필명 뒤에서 자유롭게 일신상의 사건들을 탈탈 털어보고자 했지만 그러려면 여우, 사슴, 고양이 같은 싱크로율이 제로에 가까운 동물들을 고려해야 했는데 말이죠. 여하튼 저는 ‘수달’이 되어 암과의 사투(?)를 담아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 이하 《아슬러》는 제가 경험한 암이 화두입니다. 삼십 대 초반에 어린아이를 혼자 키우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만, 딴에는 암 환자의 성별에 따른 차이를 비교하고 싶어서 썼어요.
‘제 암이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질병 경험자(혹은 보유자), 약한 몸에 대한 편견까지 당차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욕심내다간 첫발부터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저로선 순한 맛 에피소드를 매우 살살, 찹찹 섞은 것이었지만 후기를 올려주시는 분 중엔 저 대신 남편(노무쉐이), 이하 주변 분들을 아주 심하게 삿대질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사랑과 전쟁> 저리 가라의 막장 드라마 이야기가 《아슬러》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어서 서점으로! 응?)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가 일본, 대만으로 수출될 뻔했거든요. 제 주변 빌런들이 (굳이 누구라고 밝히진 않을게요) 해외에서 다양하게 욕을 먹는 상상을 하며 통쾌할 뻔했지만, 역시 나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허허허) 제가 정말 남편이 공공의 적이 되길 바랐겠습니까? 그런다고 저에게 돌아올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걸요. (통쾌함이라는 덤은 있군요.)
진은영 시인의 <나는 도망 중>이라는 시에
‘무기력의 종이 위에 나는 따스한 손바닥으로 펜을 쥐었어,’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여러 감정 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기력함’인데요. 힘들고, 슬프고, 괴롭고, 그런 온갖 감정 뒤에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는 상태가 무기력이기 때문이죠. 그런데요, 그런 상태에서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이 불끈 솟을 때가 바로 쓰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쓰면 살아집니다! 불끈. 불끈. 그 누적된 힘으로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또, 그 불끈이 여러 번 모여 청소기로 방구석도 밀고요. 나와 내가 사는 공간을 정돈하면서 살아갈 의지를 담담하게 다져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요즘은 에세이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누구나 쓴 아무 이야기’가 서점 진열대 위에서 하루가 바쁘게 바뀌고 있어요.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가 쓱 배송처럼 빠르게 쓱 하고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그만큼 쓰면서 스스로 일어선 수많은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물개박수 아니 수달 박수를 열심히 보내곤 합니다.
‘쓰는 행위가 나를 바꾼다면.’, 전 여기서 무릎을 ‘탁’ 칩니다. 펜을 쥔, 아니 키보드 앞에 앉은 우리가 어쩌면 지금의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나르시시스트들의 대거 양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페미니즘의 재생산’(페미니즘이 쓸모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라는 우려의 시선을 폴짝 뛰어넘는 걸 상상해봅니다. 나를 살리는 글이 우리를 살리고, 조금 더 괜찮은 사회가 되도록 다듬는 일이 되길요. 생각만으로도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에세이스트의 원래 의미는 사상가였다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같이 어깨동무하고, 천천히 나아가보길 바라봅니다.
오뉴월인데 감기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참 많으시더라고요. 부디, 다들 감기 빨리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따로, 또 같이 행복하길 바라며. 수달 올림.
덧. 수달은 잠잘 때 헤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잡는다는 거 아세요? 거센 물결에 따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생존본능이래요. 공존을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 쓰고 싶은 저는 아무래도 수달이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제 손을 잡아주시는 건, 독자 여러분입니다. 아시죠?!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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