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건짐>의 두 번째 이야기, 책방 운영이 이렇게 힘든 줄이야! 😉
제가 살짝 취했습니다. 오늘, 책방 문을 닫고 제 최측근과 와인을 100밀리? 안 되게 마셨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취중진담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취한 채 밥벌이 글을 쓰곤 했어요. 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취하기 전까지 술을 홀짝이며 글을 썼다고 해야겠네요. 건짐에서는 처음부터 맥주를 판매했는데, 주문하는 손님은 정말 드물더군요. 결국 야심차게 준비했던 맥주는 저랑 제 지인들이 마셔버렸고, 그렇게 책방의 맥주 판매는 막을 내린 거죠. 그 후로 저는 와인을 비치해두고는 조금씩 마시곤 해요.
어릴 때 저희 엄마는 힘들 때 맥주를 꺼내 드셨어요. 마음뿐 아니라 몸이 힘들 때도 말이죠. 때마다 김장을 100포기 이상 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거의 마무리할 즈음, 체력이 바닥난 엄마는 맥주를 마시면서 김장을 담그곤 했어요. 그 시절엔 참 이해가 안 갔죠. 아니, 몸이 힘든데 왜 맥주를 마셔서 더 힘들어지게 할까 싶었어요. 알코올 힘으로 버틴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런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제 세상은 좀 순수함이 컸죠. 이제 저는 맘보다 몸이 힘들 때 알코올을 찾는 사람이 됐어요. 할 일은 첩첩산중인데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일 때 저는 알코올의 힘을 빌립니다. 그 시절 제 엄마처럼 말이죠.
아! 책방에서 처음으로 맥주를 허겁지겁 찾아 먹었던 때가 생각나요. 8월 중순쯤 있던 일이에요. 3시가 좀 넘어 들어오신 한 손님이 콜드브루 하나를 주문하고는 책방에 비치돼 있던 은유 작가의 책을 네 시간 넘게 읽었던 날이죠. 그날을 떠올리면 저는 ‘하필’이라는 부사가 떠올라요. 하필 단가가 왜 이리 비싼 콜드브루를 갖다 놨을까. 하필 왜 두통이 온 걸까. 하필 배가 그렇게도 고팠을까. 하필 책방에 소파만 두었을까 등등요.
커피의 이윤은 1,200원이 안 되는데 순전히 제 욕심이었어요. 그깟 콜드브루가 고퀄이면 얼마나 고퀄이라고 고르고 골라 좋은 걸 들여놨죠. 양도 더럽게 많아서 두 명이서 하나만 주문해도 얼음 컵으로 두 잔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양이 많은데···. 그렇게 계산 못 하는 멍청이가 저예요. 그때는 아침 10시에 오픈하던 시절이라 아침부터 내내 에어컨을 켜둔 탓에 두통이 시작된 건데, 전원을 끄고 문을 활짝 열어두고 싶었지만 책방 입구에 앉아 계셨던 그 손님 때문에 참아야 했어요.(문을 열자마자 온갖 날벌레가 들어올 거라···) 버들이는 저를 생각해서 도시락을 5시쯤 싸 왔지만, 냄새를 풍길 수 없어 고픈 배를 틀어쥐고 침만 꼴딱꼴딱 삼켰죠. 손님이 곧 가실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소파! 지금은 소파를 거의 당근으로 팔아 치웠는데요. 처음에 책방에는 3인용 2개, 4인용 1개, 1인용 4개의 소파를 두었어요. 편안해야 앉아서 책을 보는 제 취향을 적극 반영했지만, 4시간 넘게 미동도 없이 앉아 책을 보시고는 ‘소파가 너무 편해서 좋았어요. 내일 또 와서 이 책(은유 작가 책)마저 읽어야겠어요’ 라고 말하던 그 손님에게 제가 뭐라고 답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 손님이 가시자마자 제가 한 일은 에어컨을 끄고 문을 활짝 열고 맥주 한 캔을 따서 컵에 콸콸 따라 마신 거예요. 그 4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몇 년 전 앓았던 공황장애 증상이 다시 시작된 거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브라부터 벗어 버렸어요. 계산도 못 하는 내가 무슨 책방이냐 싶었고, 책이나 책방에 관심 1도 없어 보이는 이 동네에서 무슨 책방이냐 하며 도돌이표 한탄을 했습니다. 나 자신이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에 마음도 몸도 무너지기 직전이어서 알코올의 힘이라도 빌어야 버틸 수 있었어요. 하루 순수익이 1,200원 미만이었던 8월의 어느 날, 300밀리 캔 하나를 순삭해 버렸습니다.
책방에 손님이 있는 날은 드물죠. 8월은 휴가철이라, 9월은 하늘이 높고 너무 파래서, 10월은 단풍놀이하느라 사람들은 다들 들로 산으로 떠나는가 봐요. 독서의 계절은 개뿔(죄송해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그 계절을 겨우겨우 지나온 듯합니다.
며칠간 책방에 사람이 얼씬도 안 하면 혼자서 잘도 울었어요. 사람들이랑 말하고 싶어서 책방을 냈는데,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죠. 차라리 내가 찾아가는 게 낫지 가만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제 성향이랑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울고 있는데 동네 단골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서러워서 더 엉엉 울었어요. 날것을 다 보인 저 때문에 동네책방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는 아마 다 달아났을 거예요. 그렇게나 후회하고 자책하며 울어댄 건 살면서 처음인데요. 저는 왜 아직도 책방을 하고 있을까요? (궁금합니까?)
책방에는 늘 와인이 있을 예정이에요. 손님이 하도 없어 힘들 때면 전 자연스럽게 와인 뚜껑을 땁니다. 밖이 환하든 말든 누가 보든 말든, 와인을 마시며 힘을 비축해요. 아무튼, 책방과 술은 참 잘 어울려요.
덧 : 제 와인 주량은 40밀리 정도입니다. 더 마시면 힘들어서 자제해요.
그리고 요새 자꾸 인스타 피드에 문재인 씨의 평산책방에 대한 이야기가 떠요. 사람들이 책방 밖으로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더군요. 일주일 책 판매량이 5,500권이란 소식은 압권이네요. 실화입니까! 아··· 짱나요.(책방 건짐은 일주일에 10권 팔면 많이 판다는 사실··· 실화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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