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 책방의 책방지기님들을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자주 만나고 있어요. 인천 장수동의 책방, 건짐의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책방에 진심인 그 마음 그대로!😉
어떻게 해야 책방주인이 되는 걸까, 한때 몹시 궁금했어요. 엘리스처럼 신기한 물약이라도 먹어야 신비로운 책방주인 같은 거 할 수 있는 걸까? 어··· 저 책방주인은 어느 나라에 사는 요정일지 몰라, 이 세상 사람은 아닐 거야 하면서 멋대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죠. 상상의 세계가 미치지 못할 곳은 없으나, 현실에선 물약도 요정도 안 보였으니(나만 못 찾는 걸까요) 뭐 일단은 언젠가 나도 책방주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뒤로 하고 그렇게 현실을 살았습니다.
그럼 난 책방을 왜 하고 싶어 했던 걸까 가만히 그때의 나를 돌아봅니다. 빌어먹을 머저리 같은 세상에서 일단 나부터 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신도.
“책방을 나서며 구조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덕에 나 또한 이 어지럽고 위태로운 삶으로부터 겨우 구조 받고 있다고. 이미 받아버린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진다. 변방의 작은 책방에서 우리는 서로를 구조한다.”
김성은 작가의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의 한 부분이에요.
이 구절을 읽으며 나도 나중에 책방을 내면 이런 책방(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이날의 마음을 잘 기록해뒀죠.
너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나 잘해, 난 알아서 잘하거든. 이런 생각을 하고 말을 뱉던 나는 어느새 너랑 나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쟤랑 나랑 깊이 연결 돼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어요. 같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야 건강한 사회도 가능하다는 걸.
내가 아는 걸 같이 나누고 싶다, 저들에게 배우고 싶다, 생각을 듣고 싶다, 지식이나 문화의 교류와 확장이 나와 당신 혹은 공간을 매개로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혼란스러울 때 살롱문화가 가장 왕성하게 발전했던 시기라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인간은 힘들 때 뭉치고 소통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걸까요.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며 여기저기 작은 책방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유럽 어딘가의 살롱에 모여 문학과 예술을 자유로이 떠들어대는 풍경을 떠올렸죠. 세상의 모든 책방주인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어요.
책방 이름 ‘건짐’은 외로움에서, 우울함에서, 분노와 슬픔에서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건져내는 책방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책방을 중심으로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건짐의 모임은 갈수록 늘어났어요. 소설&에세이 모임으로 시작해 고전책모임, 쓰기모임으로요. 모임 인원이 늘어 오전, 오후로 나누기도 했고 요일을 늘리기 시작했죠. 그렇게 1년 가까이 처음 바라던 대로 구조의 나날을 보낸 듯해요. 당신과 나 서로가요. 북토크를 두 번, 작가님 강연을 한 번 할 수 있었고, 드문드문 영화 상영도 해왔어요. 책방지기로서 가장 좋았던 모임은 쓰기모임이에요. 글을 잘 쓰려고 모인 건 아니고요 다만 마음을 잘 돌보고 싶은 마음에 열었는데요. 우린 매번 돌아가며 펑펑 울 때가 많았어요. 물론 몸을 뒤로 젖히며 웃을 때도 있었고요. 울다가 코를 팽 풀면 왜 이렇게 시원하던지,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가 쓸려나간 기분이었어요.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별 사건 없는 소소한 소설책 한 권으로도 누군가의 고정관념에 약간의 균열을 낼 수도 있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주는 뜻밖의 시간이 허락될 수 있잖아요. 나 자신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런 점 하나 찍는 일(혹은 도끼질)을 하고 싶어요. 그게 결국 우리를 숨 쉬게 할 거라 믿거든요. 쫌, 숨 좀 쉬자고요!
힘들어 아주 못 살아먹겠는 어느 날, 요정에 홀린 듯? 그렇게 공간을 계약하고 그날부터 내가 미쳤지, 하며 잠 못 자는 나날을 지나왔어요. 지인들의 열성 지원으로(한 달은 인테리어만 하면서 숨고 싶었던 내 바람은 어쩌고) 일주일 만에 책방 인테리어를 마친 저는, 다시 가슴을 치며 아직 준비도 안 된 내가 무슨 놈의 책방을 이라는 욕 비슷한 후회로 가슴을 치곤했죠. 그렇게 책방은 시작됐고, 울다 웃다 하면서 다양한 당신과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다량 함유한 책방주인은 당신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마다 에너지 음료를 먹은 것처럼 에너지가 쭉쭉 올라가는 경험을 해요. 혹시 당신도 그런가요? 당신이 정말 그렇다면, 책방의 이름을 참 잘 지은 거 같아요.
에밀리 디킨스는 먼 땅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존재로 책 만한 쾌속정이 없다는 말을 했다죠. 이래서 책방을 그렇게나 얼렁뚱땅 갑자기 냈습니다. (이렇게 눈물 쏙 뺄 줄도 모르고···/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기로 했다》 작가님의 내 이름 찾기 분투기, 김혜원 저자에게 편지 좀 써달라고 징징거려 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느린서재의 책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기로 했다》 저자 김혜원입니다.뉴스레터 글을 청탁받은 건 느린서재 뉴스레터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어요. 아···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 마감 날에 겨우 노트북 앞에 앉았답니다. 최아영 대표님은 저에게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쓰면 좋겠다는데 대관절 글을 쓰는 이유라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일단 에세이의 원고를 브런치에 썼을 때는 쓸 수밖에 없어서 썼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몰라 알고 싶은데 터놓고 말할 곳은 없고 글로 쓸 수밖에요. 나 지금 뭐하고 사는 거지? 싶은 혼돈의 시간 앞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나 봐요. 이유를 알고 한 짓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솔직 천만한 글로 책을 낸다고 하니 부끄러웠어요. 책이 될 가치가 있을까? 종이 낭비 아닌가? 좋은 책 이미 많은데 나까지. 그런데 책을 내고 난 뒤, 모르는 분이 제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거나 용기를 얻었다는 피드백을 주실 때 얼마나 놀랐게요? 그래서 조금 알게 되었어요. 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거구나, 연결되고 싶었어!
책이 나오게 된 것도 대표님의 공감력 덕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동시대에 나고 자라 아이 키우며 사는 여자로서 우리의 삶이 겹쳐졌다고요. 인플루언서도 아닌 사람의(요즘엔 이게 중요하다죠), 잘 팔릴지 어떨지 모를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엔 그런 감사한 공감이 있었던 것이겠죠. (황서미 작가님께 보냈다는 337박수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삐친 건 아니고요···) 글을 썼을 뿐인데 작가와 편집자, 독자가 서로 서로 공감한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납니다. 시공간을 넘는 우주적인 경험이잖아요.
책을 출간한지 10개월이 채 안되었는데, 몇 년 전의 일처럼 느껴져요. 요즘은 시간의 밀도가 높달까요. 제가 고삐 풀린 말처럼 바쁘게 뛰어다니거든요. 일 년 전엔 생각도 못 했던 일들을 여럿 시작하고 있어요. 그것은 책 덕분일까요? 맞아요! 출간 작가가 되니까 글 쓰는 플랫폼에 프로필도 바꿀 수 있고, 작가라는 새 이름이 생겨서 정말 좋아요. 책이 곧 2쇄를 찍는다니 대견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책 한 권 냈다고 인간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아요. (물론 이건 제가 대형 출판사의 대형 작가가 아니라 그런 걸지도 몰라 조심스럽습니다만) 무명작가가 출간 무명작가가 되었을 뿐···. 설마 요즘 시대에도 작가에 환상을 가지신 분은 없겠죠? 사는 게 좀 재미있어지긴 했는데, 그건 출간이란 단일 사건이 아니라 가족이 잠든 밤 좀비처럼 식탁으로 기어나가 뼛속까지 외롭고 지질하게 보낸 ‘쓰는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때 뿌린 씨앗이 책으로 싹을 틔운 것 같아요.
《내 이름···》 이 책은 30대로 살았던 10년의 기록이에요. 결혼, 출산, 육아로 인생 변화 그래프의 폭이 가장 컸던 그 시기가 사실 씨앗이 넘쳐나던 시기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에필로그에는 “무엇에도 온전히, 편히 두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보낸 시간이 아쉽다”는 문장이 있어요.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네요. 살면서 지금 이게 뭔지 알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누구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기록을 할 수는 있거든요.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보는 것, 경험하는 것, 싸우고 웃고 행복한 하루하루. 쉽게 사라지는 모든 순간이 글로 쓰면 그 자리에 남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다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꼭 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되는 삶을 위해서요. 그 씨앗들이 가끔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라고, 그런 푸릇한 나무들을 가꾸면서 사는 게 인생 아닌가 하는 거창한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순간이 소중해지잖아요. 세상에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니까요. 이 뉴스레터도 무언가의 씨앗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같이 글 써요, 우리. 안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편지할게요.
2023년 봄날의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