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교양 수업의 교수님이 기말 레포트 대신 광화문에 촛불 시위를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사진을 제출하면 그걸로 레포트를 갈음해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점은 사진만 내면 A를 주신다고 했고요. 그 주 토요일에, 광화문에 갔습니다. 대통령 선거 전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로 있었죠. 자의는 아니었지만, 레포트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문에 시위를 하고 있었어요. 그 사건은 여름에 있었지만 월드컵 때문에 묻혔어요. 그날은 초에 직접 불을 붙이고 참여했습니다. 신발 발등에 촛농이 떨어진 걸 보고, 부모님이 시위에 다녀왔냐고 물으셨죠. 위험한 곳에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촛농은 잘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그때도 겨울이었네요.
그 후 다시 광화문에 간 건, 여름이었어요. 지금의 반려인과 데이트를 하러 만난 토요일이었는데, 미국산 소고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죠. 여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거기서 아는 얼굴도 몇몇 만났습니다. 너도 여기에? 그렇게 반가운 마음, 또 걱정되는 마음으로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의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네요.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차벽을 봐야했던, 그러나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무사히 집으로 오는 지하철을 탔으니까요.
그리고 2016년, 12월, 아마 이 레터를 읽으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한 번쯤은 가셨을… 박근혜 탄핵 시위, 제 인생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자 제가 뽑지도 않은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17개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보니 이미 어두워진 거리에는 사람들이 빼곡했습니다. 여러가지 깃발이 나부끼는 그곳에, 차가 다니지 않는 서울 도로를 언제 걸어보겠냐며, 난생 처음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아기와 사진을 찍었지요. 어마어마한 노래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에 아기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밤거리에 나와 있는 것도 아기에게는 첫 경험이었지요.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서울 나들이를 이제 열 살이 된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울음을 멈추지 않던, 겁에 질린 표정의 아기를 다시 안고 서둘러 돌아오던 길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오죽하면 12월에, 거리로 나서야만 했을까요. 돌아와서는, 이제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참, 소용없지요. 절대로, 다시는, 이런 말들은 어째서 그리 쉽게 깨어지는지요. 탄핵이라는 말이 올 여름부터 슬금슬금 나왔지만, 이렇게 스스로 그 시기를 앞당기는 대통령이라니요. 제가 뽑지도 않은 대통령을 또 탄핵을 해야 하는 순간이라니… 정말 그런 일이 살면서 또 없을 거라, 그런 비상식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당연히 탄핵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이런 소란이 이제 오늘이면 끝나는구나, 싶어서 지인들에게 미리 탄핵 축하 카톡을 보냈어요. 토요일, 파티를 하자, 맥주를 마시며 밤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지요. 탄핵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에, 그럴 리가, 당연히 탄핵될 거라 말했던 저는, 몇 시간 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왜 그렇게 경솔했을까요.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표결 불참이라는 신박한 방식으로 그들이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고 도망갈지 몰랐습니다. 아, 어째서 이들은 매번, 상상하지도 못한 신선한 충격을 주는지요.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또 이렇게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일, 토요일도 불안하네요. 쉽게, 탄핵이 될 거라 말하기가 겁이 납니다. 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놀래킬지 알 수 없으니까요. 부디, 그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하기를, 자신의 할 일을 다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사실 오늘 레터에는 부산의 일들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부산아동도서전에서의 에피소드로 레터를 쓰려고 했는데, 부산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일을 맞이하고, 레터의 내용이 급, 달라지게 되었어요. 모른 척, 부산에서의 일들을 추억하기에는 매일 쏟아지는 속보에 숨이 막힐 거 같으니까요. 부산으로 돌아오는 12월 1일 밤 기차에서, 저는 12월의 계획들을 상상해보고 정리했습니다. 만나야 할 저자분들과의 약속, 새로 편집에 들어가는 원고, 25년도 출간 리스트를 정리했지요. 그리고 기차에서 저자분의 메일에 피드백을 드리기도 했고요. 따뜻했던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흥분과 설렘을 안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산뜻하게 12월을 시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어떤 이상한 놈이 말도 안 되는 계엄을 발표했습니다. 3일 이후,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뉴스 속보가 너무 많이 떠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전부 끊어버릴까, 생각했습니다. 아침마다 오던 주문도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책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는데 누가 책을 볼까요.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이 이 지경인데 누가 책을 볼까요. 노벨상 이후 떨어진 주문이 다시 좀 회복하려는 순간, 그 미친놈이 그걸 또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고, 느린서재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 계엄을 발표하면서 언론과 출판은 계엄의 통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이 나라를 그리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통령이 멍청하다고 늘 생각은 해왔지만, 그 순간, 깊은 단전에서부터 욕이 치솟았습니다. 도움 준 적도 없으면서, 이제는 통제와 감시까지 하겠다니요. 이제까지도 각자도생의 마음을 품고 숨이 턱까지 찰 때까지 아등바등 책을 만들면서 살았는데, 그놈은 그날 밤 저에게 엄청난 모욕감까지 주었습니다. 지가 뭔데, 어째서, 말도 안 되는 통제와 감시까지 하겠다는 건지요. 지금이, 2024년인 게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어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요. 뭘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어야 합니다. 저도 뭘 모르면 가만히나 있자, 괜히 말해서 무식한 거 티내지 말고, 이런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저자분이 이야기하실 때, 잘 모르면 가만히 있다가 집에 와서 찾아 봅니다. 괜시리 아는 척 말했다가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해를 살 수도 있죠. 모르면 포커페이스라도 해야 합니다. 아니, 모르면 차라리 솔직하던가요. 그놈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전,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래도 그를 대신해 국정을 어느 정도는 적당히라도 해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던지요. 그는 모르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나댔습니다. 가만히나 있었으면, 지금 이런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해봅니다. 본인이 능력이 없으면 주위에 유능한 사람들이라도 둬야 좋은 리더가 될 텐데, 그놈은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무식하고 나대고,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의 업보겠지요. 물론 저는 그를 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뽑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니겠지요.
이렇게, 이만큼의 나이를 먹고 보니, 이렇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찮다고, 내 일이 바쁘다고 정치나 사회에 무심했던 순간들이,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이, 이런 일들을 만들어 낸 거 아닐까... 싶었어요. 우리 가족만 아니면 돼, 우리 아이만 아니면 돼, 나만 아니면 돼, 라고 생각한 모든 순간이 사람들 사이의, 세대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을 만들어낸 거겠죠. 내가 안 뽑았어, 너가 뽑았으니 너네 잘못이야,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전 한 번도 제가 정치적인 사람이라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맞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표를 주었고, 그런 식으로 세상이 쉬이 흘러가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고 읽고 듣는 정치가, 우리끼리만의 이야기였다는 걸,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때 알았습니다. 제 주위에서는 모두 문재인을 뽑았지만, 그건 우리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못 들었기, 아니 안 들었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었던 결과였어요. 당연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그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제가 믿는 당연한 세상이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희망이 절망보다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그 어려운 희망을 오늘은 품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제 감정을 거르지 못하고 레터를 쓰고 말았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캄다운된 레터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부디 그럴 수 있도록, 내일, 제가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저는 내일 오전에 여의도에 가려고 합니다. 혹시 가신다면 목도리와 장갑 꼭 챙기시고, 단단히, 껴입고 오시기를요. 여의도 어디에선가, 우리 신나게 시위하고 힘을 보태고 돌아옵시다.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편으로 가져올 수 있기를요.
다음 레터는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음 좋겠습니다. 부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