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투정
저희 동네는 비가 많이 오네요. 아침부터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이제는 막 쏟아집니다. 저는 사실 어제 레터를 쓰고 자려고 했는데, 애들을 재우다가 같이 자버리고 말았어요. 이번주 내내 잠이 좀 부족했어요. 신간을 서점에 등록하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원고를 마감해야 했거든요. 이슈가 좀 있어서 10월 마지막 주에 꼭 입고가 되어야 하는 책이라 시간이 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레터를 쓰지 못하고 그냥 잠이 들었어요. 자다가 중간에 깨어서 아 이제라도 레터를 쓰고 자야 하는데, 하다가 또 그냥 까무룩 잠들어 버렸네요. 아침에 일어나 후회막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기절하듯 잤기에 오늘은 개운하게 원고를 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네요.
비가 와서 걱정이긴 합니다. 내일 새벽, 저는 천리포수목원 책바슴 행사에 가거든요. 혹시 그 근처에 계시다며 와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비가 오니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얇은 종이는 비에 취약하고 비가 오면 야외 행사는 완전 꽝이니까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대책이라는 게 딱히 없어 보이는 주최측의 설명...🤔) 비가 오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말이에요. 제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니 비가 오면 그냥 수목원 산책이나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또 책을 못 팔면 마음이 편치는 않을 텐데, 저는 모순적인 인간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하여… 이 이야기는 모두들 많이 했을 테니, 저까지 이야기하면 피로하시려나요. 사실 솔직히 저는 좀 피곤하거든요. 상은 상이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하루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상 받은 게 안 좋다는 건 아닙니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특히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그 늙은이가 받지 않아서 더욱 좋습니다. 한강 작가가 받아서 더욱 좋고요. 제가 죽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얼떨떨합니다. 사실 한국문학은 그 전부터 참으로 좋았으나, 그들이 한글을 몰라, 이제야 노벨상을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한림원에 이야기하고 싶어요. 너네가 한글을 몰라 한국 소설을 읽지 못해서 그렇지, 그 밖에도 좋은 소설이 참으로 많단다, 라고요. 내년에도 한국 작가에게 준다고 해도 이젠 놀라지 않을 거라고!
안 궁금하시겠지만, 제가 보내드리는 레터이니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최근에는 에세이들을 많이 읽었지만, 전 원래 소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한국 소설을 미친듯이 읽었던 2000년대 초반, 제가 좋아한 소설들은 이런 소설들이었어요. 가족과 식사, 그 안의 모순과 슬픔과 세밀한 감정들을 많이 넣은, 하성란의 <식사의 즐거움>이라는 중편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슬프지만 담백한 이 소설을 좋아했지요. 저의 최애 소설,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소설가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로 역시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 이 소설이 참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자주 울기는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역시 울었습니다. 디스토피아를 이렇게 그려낼 수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그지 같은 상황이 펼쳐져도 그리 쉽게 죽음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비참해도 끝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5.18을 다룬 소설로는 정찬 소설가의 <완전한 영혼>도 있지요. <소년이 온다>와는 달리 단편이니 좀 더 쉬이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소설가 이재웅의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도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읽기가 무척 괴로웠거든요. 다시는 이런 소재를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소설이 이토록 사람을 괴롭게 할 수가 있나, 싶었던 소설로, 아주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던 소설이었어요. 하지만 유명한 소설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품절이네요. 이북으로는 아직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붕대감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자들만 나오는 이야기고, 인물들의 사건이 다 조금씩 얽혀 있지요. 역시 중편 소설이라 부담없이 하루 만에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 소설가 이기호의 작품도 빠뜨릴 수 없죠. <차남들의 세계사>를 추천하고 싶네요. 어쩌면 이렇게 찰지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을까 싶어 제가 참 애정하는 소설가인데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이 소설이 재미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아직 안 보셨다면, 이번 주말에 한 번 읽어보셔도…!
줄을 서서 책을 사고 심지어 책이 없어서 팔지를 못한다는 기사를 보며 사실 부아가 났습니다. 평소에도 좀 그렇게 서점이 북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책이 없기는 왜 없어, 그럼 다른 책들은 책도 아니야? 라는 삐딱한 마음에 말이죠. 아니 교보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책이 없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다른 책도 얼마나 좋은 게 많은데…라고 짜증을 내봤자 괜한 심술이라는 걸 알아요. 마침 친구 남편이 해당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서 카톡을 보냈습니다. 노벨상 발표가 나던 날, 퇴근했던 남편은 다시 출근을 했다고 하네요. 보너스 좀 나오려나, 하고 물었는데, 뭐 그건 사장님 마음이니 알 수 없겠지요. 부디, 꼭 보너스 받아서 연말에 친구네 집이 풍족하면 좋겠어요. 저도 가서 좀 얻어 먹게요. 치킨이라도 한 마리… 노벨상 콩고물을 저도 좀 받아보고 싶어서요.
인스타에 온통 한강 소설가의 책이 올라와 괜시리 인스타를 꺼버렸습니다. 모든 이가 같은 책 사진만 올리니까 괜시리 또 입이 불쑥 나옵니다. 그냥 축하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이제 이런 사진 그만 올릴 순 없나, 싶은 마음. 다른 책에도 관심을 좀 가져주면 좀 좋아, 라는 마음. 저의 반려인은 다른 책들에도 낙수효과가 있을 거라면서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무슨 놈의 낙수 효과야, 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괜시리 저를 위로하려다가 날벼락을 맞고 말았네요. 심기가 불편한 와이프 눈치를 보더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며, 자기도 인스타 때문에 짜증이 난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합니다.(저희 남편은 한강 소설가의 작품은 하나도 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물론 느린서재 책도 안 읽어요. 그래도 불만은 없어요. 이 레터도 안 읽어요.😂) 물론 당연히 이 레터를 받아보시는 독자님들은 느린서재 신간을 보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게다가 <소년이 온다>는 진작에 다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속 좁은 이야기를 어디에도 할 수 없어 괜히 레터에 투정을 부려 봅니다. 투정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보니 세상에서 제일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네요. 어쩔 수 없이 오늘 밤도 와인 한 잔 해야겠어요.
아, 맞다. 오늘 … 느린서재 책을 하나씩 구매해 주시면 무척 좋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어제가 제 생일이었거든요. 그게 저에겐 제일 큰 선물이라서요.(얼굴이 화끈화끈😂) 히히. 오늘 구매하시면 아마 10년 동안 좋은 일이 생기고, 소원도 이루어지고 건강해지실 거예요. 만수무강에 대대손손 행복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매일 기도하고 있거든요.😅
그럼 전, 천리포 책바슴 행사에 다녀오겠습니다. 2주 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