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추석과 애매한 마음
추석이 지나갔습니다. 믿을 수 없이 더운 날들 속에서요. 당신은 어떻게 보내셨을지, 스트레스 없이 보내셨을지, 궁금합니다. 너무 긴 연휴 덕분에 아이들은 오늘 아침,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엄마, 방학이 끝난 것 같아! 라고요. 하하 근데, 저도 그런 기분이었어요. 드디어, 연휴가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절에 시댁도 다녀오지 않았고, 음식도 하지 않았지만, 그저 더워서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 징징거리는 소리일까요? 저는 긴 긴 빨간 날들 속에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만약, 이렇게 여름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겨울이 오긴 오는 걸까, 하고요. 아이들에게도 물었지요. 여름이 계속되는 거 아닐까? 아이들은, 당장, 그럼 산타 할아버지는 어쩌지? 라고 걱정을 하더라고요. 이 폭염에, 산타 할아버지도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 같아요. 썰매가 아니라 수영복을 입고 헤엄쳐서 오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추석, 시댁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이 아프셔서 이번 추석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어요.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제가 가서 딱히 할 일도 없지만, 이번엔 그 덕에 어머님이 그래도 편하게 지내셨어요. 아버님 간병으로도 힘든데, 제사까지 지내야 했다면, 어머님도 병이 나셨을지 몰라요. 종종 남편은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마음이, 자신의 아빠에게는 아마 종교와 같을 거라고요. 추석에 교회를 가는 것과 같은 마음일 거라고요. 제사를 지낸 덕분에 이만큼 잘 살았다고, 아버님은 굳게 믿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제가 곁에서 본 바로는요. 제사는 제사대로 의미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있어요. 제사를 지내느라, 가족들이 모두 다 지치고, 아무도 먹지 않는 음식을 그 상에 올려야 하는 거요. 그리고 그 음식은 제사 후 내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가, 1년 지나 아마 버려질 거예요. 아무도 먹지 않을 음식을 올리기보다 차라리 우리가 먹는 음식을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제사 음식이라는 것도 좀 실용적으로 바뀌면 어떨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시댁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늘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게 죽어야 끝난다… 는 그 말이 가슴을 사무치게 합니다. 2024년에도 제사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를 원망하다니, 이거야말로 SF보다 더 무섭지 않은가, 싶어요. 친정 엄마와도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죽거든, 제사상 같은 거 차릴 생각도 말고, 맛난 식당에 가서 그날 하루 잘 먹거라~" 하는 말을 종종 하세요. 남동생이랑 전, 제사 대신에 좋은 식당에 가서 잘 먹으며 그날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요. 그렇게 모든 걸, 산 사람에게 맞추어 가고 싶어요. 그러나 언제까지 지구가 괜찮을까, 그런 생각으로 결국 귀결이 됩니다. 엄마 아빠가 늙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지구가 뜨거워 폭발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맞아요, 요즘 제 머릿속 회로는 늘 이런 식입니다.
추석 연휴, 넷플릭스에 <무도실무관>이 올라왔더라고요. 무엇을 볼까 이리저리 돌리다가, 신작을 볼까 하고 틀었는데, 정신 건강에 썩 좋은 영화는 아니었어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제가 보기에, 성범죄자들이 다시 출소해 또 다시 성범죄를 일으키는 내용은 보는 내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더라고요. 처음엔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런 사람들이 출소를 하지? 출소를 한 그들을 감시한다고 전자발찌를 채우고, 그들을 미행하는 인력이 아까웠습니다. 하루 종일 그들이 범죄를 또 저지르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무도실무관이라는 사람들은 그들을 제압하다가 죽기까지 하고요. 영화니까,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나빴습니다. 이 영화 속의 여자들은 아이이건 어른이건 모두 잠재적 피해자가 됩니다. 늘 범죄자의 레이더 망에서 하루라도 안전한 날이 없고요. 여자가 계속 예정된 피해자로 나오는 것도 기분이 나쁘고, 남자 주인공이 그걸 구해주는 구도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아니 설정 자체가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르겠어요.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뭐지? 싶더라고요. 뭘까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려는 영화인지, 성범죄를 조심하라는 영화인지, 아님 무도실무관이 이렇게 활약하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해라, 인지… 이 영화의 의도가 무얼까, 오래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의 활약도 액션도, 하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자로 살아오면서 밤길을 걸으며 뒤돌아 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거짓말이죠. 공중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남자가 숨어 있다가 나를 찌르지 않을까 고민한 적도 많아요. 택시를 타고 오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이제까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날들을 자극하는 영화였습니다. 감독은 그냥 악당 때려잡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여자는 오직 성범죄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너무 진지하게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어요. 킬링타임용 영화에 뭘 그리 많은 의미 부여를 하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기분이 찜찜한 걸 보면, 그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해… 라는 문장이 다시 제 머리를 지배하네요.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 레터가 조금이라도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요.
저는 요즘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에 관한 기록, 그 원고를 편집 중이에요. 그래서 제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법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제 마음을 채워요. 나쁜 사람에게 제대로 벌을 주지 않는 법,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주는 법, 증거가 넘치고 차도 유죄가 되지 않는 법, 그런 법이 무슨 소용이 있지, 하는 생각에 원고를 보다가도 울컥 울컥합니다. <무도실무관>도 그런 의미에서… 저를 화나게 하고, 찜찜하게 했던 듯해요. 사적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나라에서 사는 게, 맞는 걸까요? 저는 요즘 책을 만들며, 사실 살짝 자신이 없어졌어요.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 읽을수록 이토록 괴로운데,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으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마음이 터질 듯 답답한 이 원고를 결국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내놓을 테지만, 많이 읽어 달라고는 못할 거 같아요. 이 참담함과 끔찍함을 읽어 달라고 할 자신이 없거든요. 책의 인세와 출판사 수익 10%까지 기부하기로 저자분과 약속을 했지만, 이 책의 판매를 자신할 수 없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책을 만드는 속도도 더딘 게 아닌가 싶네요.
9월에도 10월에도 11월에도, 많은 북페어가 예정되어 있어요. 10월에도 매주 책을 팔러 전국을 떠돌 것 같습니다. 하반기에도 불새처럼 책을 팔고, 또 후기를 들려드릴게요. 지난번 파주에서도 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님을 만나, 힘과 응원을 받았어요.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느린서재 책을 보며, 이 책도, 저 책도 집에 있다고 말하는데 뿌듯했습니다. 느린서재를, 혹은 저를 믿고 그 책을 사시는 거니, 저도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습니다. 저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셔서 … 감사해요!
즐거운 일보다 걱정할 일, 슬픈 일, 찜찜한 일이 더 많았던 9월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런 10월을 마음 깊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보다는 마음이 가벼운 10월이 되었음 좋겠어요. 당신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