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방학입니다. 방학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여름도 한가운데, 방학도 한가운데, 저는 지금 어딘가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을 해야 하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너무 더운 여름이고 너무 더워서 또 슬픈 여름이고, 게다가 방학이고, 제 머릿속도 더위에 녹아버린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오늘의 레터는 녹아버린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머리가 너무 안 돌아가는 것 같은 날도 있어요. 냉장고에 뇌님을 잠시 넣어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 ‘뇌님’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이 단어를 아신다면 당신은 아마 <호기심 딱지>도 아시겠죠? <호기심 딱지>는 저희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비에스의 프로그램입니다. <호기심 딱지>는 사실 저도 좋아합니다. 새삼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라서 좋아합니다. 특히나 피삼총사가 나와서 열일을 하는 모습, 백혈구나 적혈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렇게나 자세히 보여주니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비에스 만세!)
그중 최고는 뇌님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어요. 분홍색의 뇌님은 우리 몸을 지배하고 여러 명령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나와요. 그래서 ‘님’자가 붙는 걸로 설정을 했겠죠. 역시, 뇌님은 중요해, 저는 종종 아이들에게 그렇게 물어보곤 합니다. 너의 뇌님은 지금 무슨 생각 중이야? 방을 이렇게 어지르고도 뇌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라고요. 제가 뇌님이나 적혈구 따위를 들먹이며 묘사를 하면 아이들은 허파에 바람이 든 것처럼 웃습니다. 가끔은 저도 뇌님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뇌님… 저는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까요… 라고요. 그러나 뇌님은 답이 없습니다. 시냅스 연결이 잘 되지 않나 봅니다. 그런 날에는 알코올을 마셔야 합니다. 그럼 또 시냅스가 반짝 연결이 되거든요. 녹아버린 뇌님이 또 잠시 살아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죠. 그러나 그건 착각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냅스 연결이 잘 되지 않아서 기억도 잘 안 나고, 공부를 해도 예전만큼 머리에 입력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페인을 들이붓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알콜이 들어가면 아주 순간적으로 시냅스 연결이 된대요. 그래서 인간들은 자꾸만 강한 자극을 찾게 되고 카페인 중독이 되고 줄담배를 피우는 거라는 내용을 어디에선가 들었는데… 어디인지는 역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덥고 지쳤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하고 말았어요.😂
방학이니까 몰래 몰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딸은 좀 화가 난 것 같아요. 분명 엄마는 집에 있는데, 자기와 놀아주지 않습니다. 점심만 차려주고 계속 일을 하죠. 큰딸은 금요일 하루만 미술 학원을 갑니다. 집에서 구몬을 하고, 오전에 방과후 수업을 다녀오고 나서는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리코더를 붑니다. 그러다 보니 심심해집니다. 그러나 엄마는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는 지금 회사에 출근한 것과 똑같아, 너랑 놀 수가 없어, 엄마는 방학이 아니거든. 아, 너무 매정한 말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엄마는 분명히 T가 맞습니다. 분명 저런 말이 아니라 다르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걸 알면서도 다른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사실대로 말하고 말았습니다. 삐! 에러입니다. 딸은 더 화가 난 것만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엄마라는 사람은 또 T처럼 말하고 맙니다. 엄마는 책을 만들어야 해서… ! 으악, 딸의 검은 눈동자가 양 옆으로 굴러갑니다. 무섭습니다. 그러나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 엄마는 그저 난감할 따름입니다.😔
뇌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방학에는 엄마 아빠도 방학을 주면 안 되는 걸까, 도대체 이렇게 곤란한 방학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 걸까, 라고요. 엄마 아빠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원에 갑니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놀겠죠? 그런데 친구들은 학원에 있네요. 그래서 다시 학원에 가야 하는 구조… 인데 저희 딸은 가지 않겠답니다. 그러니 심심할 수밖에요. 심심하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번 방학에 많이 읽고 또 많이 봤습니다. 30권도 넘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와 이비에스의 <올림포스의 별>을 내내 보고 있습니다. 이번 방학은 어쩐지 <호기심 딱지>와 <올림포스의 별>로 장식이 될 듯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얽히고 얽힌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어서요. 끝이 나지 않는 그리스 로마 신화 덕분에, 사람이 소가 되고, 제우스는 자꾸만 바람을 피우고, 갑자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신화 덕분에 이번 방학도 그럭저럭 넘어가는 중입니다.
딸아이의 친구들은 많이들 놀러간 것 같습니다. 캠프를 간 친구도 있고요. 신청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 시골에서 보내는 일주일의 캠프를 딸아이는 가지 못했습니다. 에효, 모든 게 바쁜 엄마 잘못입니다. 엄마는 참으로 다양한 일을, 시간에 맞춰 해내야 하는 사람이네요. 일도 해야 하고 무엇이든 알맞게 신청을 해야 하고, 밥도 때에 맞춰 잘 차려야 하고, 속옷이나 겉옷도 딱딱 챙겨서 서랍에 넣어야 하고… 와! 저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많은 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참으로, 엄마라는 사람은 만능팔을 가진 가제트 형사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생각해 보니 저는 정말 가제트 형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습니다. 나와라 만능 팔! 이라던지, 모자가 헬리콥터처럼 막 돌아가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제트 형사를 사랑했답니다. 만능 팔이 있다면 살기가 조금은 수월할까요?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는 조금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뇌님은 생각하는 것 같네요.
이번 여름은 사실 꽤 슬픈 여름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했던… 지구가 뜨겁다…가 현실로 느껴졌거든요. 진짜로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온열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올 여름 19명이라고 합니다. 낮 시간에 야외 활동을 하시던 어르신들이 쓰러지셨고 결국 돌아가셨어요. 지난 주말에 저는 시댁인 광주에 다녀왔는데요. 거기서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어르신들은 그 뜨거운 비닐 하우스 안에서 선풍기도 없이 농작물들을 관리하고 계세요. 더워서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비닐 하우스 안에서 말이죠. 쓰러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광주는 서울 경기보다 더 더웠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일을 하고 계세요.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다 어르신들 손을 거쳐 온 것인데, 그 생각을 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입맛이 없습니다. 더워서 그런 것인지, 인간이 싫어져서 그런 것인지, 슬퍼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내년 여름에 온열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거의 50명에 이를 겁니다.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죠. 이제 여름은 죽을 수도 있는 계절이 되었네요.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쟤 또 저런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해요. 네, 맞아요. 제가 T라서 그런 걸 어쩌겠어요.
아무리 봐도 이제 돌아갈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의 여름을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생각조차 오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해온 짓을 생각하면 말이죠. 인간만이 썩지도 않는 물건을 만듭니다.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여름이라서 뇌님이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아이스팩을 끌어안고 자야겠습니다. 2주 뒤에는 머리를 식히고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