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의 이상한 행복
비가 많이 오고 바람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불고 있네요. 밤마다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는데, 창문을 덜컹 덜컹, 그래도 아침에는 맑은 하늘을 가끔 보니 좋아요. 모두 비 피해 없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문학처방전> 북토크가 있었어요. 얼마 전에 <문학처방전>은 중쇄를 찍었어요. 북토크가 끝나고 난 뒤에, <햇살속으로> 책방 안쪽에 있는 작은 바에서 저자 선생님, 같이 공부하시는 친구분들, 그리고 책방지기님, 저, 이렇게 조촐한 뒤풀이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책방 안쪽에는 작은 바가 있어요. 저는 잘은 모르지만, 좋은 위스키가 가득 도열해 있었습니다. 책방지기님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죠. 왠지 하루키가 생각났습니다. 하루키도 소설가가 되기 전에 칵테일 바를 운영했었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방을 보니, 왠지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위스키에 맞는 잔들이 준비가 되고... 저는 위스키는 잘 몰라서 와인을 주문했습니다. (술값은 받으시고 간단한 안주는 계속 제공해주십니다. 치즈와 초콜릿, 땅콩 등등... 책방지기님과 이곳에서 책 이야기, 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이날은 어쩐지 취하고 말았습니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저자 선생님은 만성신부전을 앓고 계셔서 술은 드시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날은 어쩐지 한 잔 이상 술을 드신 것 같아요. 괜찮으신지,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가 열심히 이고 지고 다니면서 <문학처방전>을 팔러 다닌 덕분에 1쇄가 다 나갈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해주셨는데... 돌아오는 길에 저는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그랬는지, 조금 운 것도 같아요. 그래요. 어쩌면 조금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책을 팔러 다니지만, 책을 팔러 가기 전에는 항상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못 팔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안고 가거든요. 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실 것 같은데... 네, 사실, 행사장에 가기 전에는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못 팔고 집에 들어가면 어쩌지, 이 무거운 책들을 다시 지고 가면 어쩌지, 독자가 오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버벅거리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굿즈를 준비하는 것 같아요. 엽서라도 나눠드리고 관심을 보이고 하면, 그제서야 제가 이 책은 이런 책이에요, 하고 배에 힘을 주고 설명할 수 있거든요. 사실은 쫄보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어필할까, 그 생각에 사실은 잠이 안 오는 날도 많아요. 진짜 재밌는 책인데... 설명할 길이 없네....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동안 책 이고 지고 다니면서 우리 대표님 고생했다고, 알아주시니 기분도 좋고 또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문학처방전>은 도서전에서 정말 인기가 많았습니다. 용인에 실제로 있는 약국이라고 하니, 다들 신기해하셨어요.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지 않는다, 항생제 처방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하면 이야기를 들어준다, 글쓰기를 한다, 요상한 약국이다, 다들 궁금해하면서 <문학처방전>을 사가셨지요.
사실 저도 얼마 전에 일리치 약국에 들러 처방을 받았습니다. 용인에서 저자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헛구역질이 나고 배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이어졌어요. 아, 이러다가 운전하다가 차에 @@하겠구나, 싶어서 땀이 비질비질... 바로 일리치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염의 징조... 그동안 수없이 겪어온 장염의 증상... 일리치 약국의 문을 열고 배를 움켜 쥐고 약사님에게 다급하게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약사님 저... 화장실 좀... 창피하고 뭐고를 떠나... 그저 저에게 필요한 것은 화장실... (죄송합니다. 이런 더러운 이야기를 레터에 하려던 건 아닌데...😭) 화장실에 다녀온 저는 염치불구하고 장염을 낫게 해달라고 약사님에게 사정했습니다. 제발, 저에게, 딱 맞는 약을 주세요, 흑흑. 왜냐하면 저녁에 또 북토크에 참석하러 가야했거든요. 서울에 가기 전에 이 증상을 멈추지 않으면, 분명 큰 실수를 할 것 같아서요. 평소에도 이런지,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등등... 간단한 상담이 끝나고 저는 아마도 한약이 들어간 가루가 타진 따뜻한 물 한 잔을 처방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지금 나의 생명수다, 라는 마음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약을 마셨지요. 당연히도... 그 약으로 장염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마도,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요. (사업자 대출 연장 이슈로요. 은행에서 3개월을 연장해준다, 상환을 해라, 자잘한 대출을 다 없애라, 등등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잠이 모자랐습니다. 창고에 쌓인 재고들을 보면서, 또 어디에 가서 책을 팔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불면증에 시달렸죠. 운동도 부족했습니다. 아이들 오기 전에, 외부 미팅과 편집 일들을 끝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해 점심을 거르고 돌아다니기 일쑤였으니, 위와 장이 화가 날 만도 합니다. (오늘도 운전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책방도 하나 들려서 오니, 벌써 네 시, 김밥집에서 김밥을 하나 포장하는데, 사장님이 저에게, 왜 이 시간까지 점심도 못 먹은 거야, 하는데 또 울컥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 시간까지 뭐하느라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을까요.) 게다가 운동도 소홀히 했으니... 네... 그야말로 아픈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제 시간에 밥 잘 먹고, 책이 안 팔려도 스트레스 안 받고, 잠도 제시간에 잘 자고, 운동도 꼬박꼬박... 그렇게 살면 건강은 할 거 같은데, 일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아요. 어느 저자분이 저에게 그랬거든요. 미친년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남는 것도 별로 없는 게 자영업자고, 버티기만 해도, 다행인 것이 자영업자라고요. 업장을 위해 광고도 하고, 할인도 하고 인건비 아까워 홀로 일하지만, 그래도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그게 자영업이라고 했어요. 지금 대표님도 꼭 그런 모양이 아니냐고, 하시는데...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지점이 있다고 말하면, 미친년처럼 보일까요. 네, 분명 행복한 지점이 있긴 합니다. 그건 뭐랄까, 제가 사랑한 원고가 책이 되어, 천 명의 독자의 서재에 꽂아져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행복해집니다. 천 개의 서재를 생각해 봅니다. 느린서재 책들이 꽂혀 있는 서재를요. 천 개의 서재의 한 귀퉁이를 채웠다니, 참 뿌듯하네요. 부자가 되는 것보다 그게 더 행복한 일 같아요. 이상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정아빠는 제게 돈 안 되고 시간만 많이 쓴다면서 집에서 애들이나 잘 키워라, 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엔 돈이 안 되는데 행복한 일이 있거든요. 물론 당연히 돈이 되면 조금 더 행복할지도 몰라요. 원빈은 드라마에서 "얼마면 돼?"라고 물었지만, 얼마를 주셔야 할지 모를 일들도 세상엔 있어요.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지만, 돈으로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걸, 이렇게 알아갑니다. 화장실 청소도 돈 주면 해주겠다고 아파트에 전단지가 붙지만, 글쎄요, 책을 만들고 파는 일을 얼마면 되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얼마인지 모르겠어요. 느린서재 책이 꽂혀 있는 천 개의 서재를 얼마의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글쎼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음, 알려주세요. 아마도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대표님들은, 다들 이런 마음으로 책을 만드실 거라고 얼추 짐작해 봅니다. 돈이 안 되도 행복한 지점, 다들 있어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엔 돈이 안 되는 책을 만드는 거죠. 어쩜 돈 생각을 하는 시냅스가 없는 걸지도 몰라요.😂
오늘도 짧게 써보려고 헀는데, 또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길어서 읽기 불편한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다음 레터에는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 써보겠습니다. 길게 쓰는 저를 걱정하지는 마세요. 저는 사실 레터 쓰는 이 시간이 행복하거든요.
하나 알려드릴 게 있어요. 제가 예전 레터에서 어떤 투고 원고를 읽고서 펑펑 울었다고, 그 책을 내게 되면 알려드린다고 했었는데요. 그 레터를 보내고 나서 저자분을 만나 느린서재를 어필을 했으나, 연결은 되지 않았어요. 무척 아쉬웠지만,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이 이야기를 했더니 저의 시조카는... 숙모가 그렇게 같이 하고 싶은 저자면 돈 더 주고 데려오면 안 되나요? 라고 묻더라고요. 돈 더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그 저자분도 여러 출판사와 미팅을 한 후, 결정한 일일 테니까요. 인세는 어차피 같은데, 제가 선인세를 더 드린다고 그분이 움직이고 말고, 이게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은 했는데,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언제, 그 책이 나오려나 했는데, 얼마전에 그 책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와서 더 좋더라고요. 비록 느린서재에서 출간할 수는 없었지만, 제가 좋아했던 원고가 책이 되어 나왔으니 구독자분들에게도 알려드립니다. 그 원고가 언제 나오려나, 하고 기다리신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바로 이 책입니다. 이 문장을 클릭하세요. 읽기 전에 손수건 준비하시고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읽는 건 비추입니다. 지금 잠깐 다시 도서 소개 부분을 봐도 또 울컥합니다. 다양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랑 속에서 결국 한 사람이 살고 또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아갑니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어떤 광고비도 받지 않았습니다. 출판사 내부 직원도 모르고 저자분도 제가 이렇게 쓰는 걸 모를 거예요. 좋은 원고니 그저 ...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을 거 같지만, 홍보해 봅니다.)
그럼 저는 또 2주 뒤에 당신의 메일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많이 덥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 피해 없으시기를요. 아무도 비나 더위 때문에 죽지 않는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여름이었다, 라고 경쾌하게 끝날 수 있는 여름이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