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이란 무엇인가
또, 2주가 지나갔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업무에 복귀했지만 아직 체력은 회복되지 않은 듯합니다.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세금 신고를 하고 온갖 잡다한 일부터 재쇄를 찍는 일, 기획된 원고 일정을 관리하는 일··· 그 와중에 이렇게 또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일단 도서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볼까 합니다. 아, 도서전 이야기 지겹다···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해볼게요.😅
저는 도서전이 있었던 금요일 저녁 본가인 과천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저희 집이 시흥인데 강남으로 출퇴근을 해보니 너무 힘들었거든요. 금요일까지 팔린 책들을 살펴보고 더 가져올 수 있는 책들을 차에서, 그리고 과천에서 챙겼습니다. 다행히도, 저희 엄마가 과천으로 가져다두신 느린서재 책들이 있어서,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그 캐리어는 동생이 미국에 갈 때 썼던, 거의 이민가방처럼 큰 캐리어···. 내일 아침에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캐리어를 끌고 갈 딸이 어쩐지 불쌍해 보였는지 아빠가 아침에 태워다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나 혼자 갈 거라고 고집을 부려보았지만, 괜히 거기서 기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아빠의 호의를 쉬이 받기로 했습니다. 강남 가는 길이 막힐까 걱정했지만 생각과 달리, 금방 코엑스 도착했습니다. 코엑스에 가는 동안 아빠는 제게 대체 넌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으셨어요.😑 음, 아빠는 아직도 인쇄소와 출판소를 헷갈려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인쇄소(?)의 일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인쇄소는 제가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건네면 책의 형태로 만들어주는 곳이라고, 인쇄소는 출판사의 거래처다···! 라고 다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된 편집자의 일에 대한 정의··· 근데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8년, 출판사에 들어갈 때도 아빠는, 제가 인쇄소에 간다고 생각을 하셨거든요. 아무튼 여차저차 해서 다시 또 설명을 하고, 그래서 결정적인 그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대체 얼마나 벌어? 라는, 제일 듣기 싫은 그 질문이요.🙄 잘 먹고 잘 살 정도로 많이 버니 걱정 마세요! 라고 싶지만 너무 티가 나는 거짓말이라서, 이제야 조금 남는 수준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이렇게까지 고생하는데 인건비도 안 나온다면 그 일 하지 마라, 라는 말이 또 또 또 아빠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아빠. 아니 세상에 쿠팡도 몇 년을 적자로 유지해왔는데, 저처럼 작고 작은 출판사가 대번에 수익을 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주변 대표님들 말에 따르면, 그저 빚 안 내고 남는 거 없어도 회사가 굴러가기만 해도 성공한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희 아빠는 대번에, 그거 하지 마! 라고 해서, 역시, 사람은 안 변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이라면, 분명 이런 아빠의 말에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엉엉 울거나 아빠를 째려보거나, 내가 이 차를 왜 탔지··· 라며 제 선택을 후회했을 텐데, 이번엔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무래도 맷집이 세졌나 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상처를 여간해서는 받지 않으니 말이에요.
느린서재를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대표님은 책은 잘 만드는데 정말 못 파시네요? 이런 책은 벌써 중쇄 찍었어야죠.”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편집자 출신이라 마케팅엔 젬병이에요. “대표님은 출판사에 오래 있었다면서 온라인 서점에 친한 엠디 없어요?” 허허, 네, 아는 엠디도 친한 엠디도 한 명 없습니다. 엠디 미팅하러 가는 것도 당분간은 못해요. 엠디 미팅하러 가도 느린서재 책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애들 픽업하러 와야 해서, 서울 왔다 갔다 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답니다. “느린서재 표지에 쓰인 일러스트가 너무 구려요.” 허허 이런 이런, 제 딴에는 이쁘게 만든다고 한 건데, 죄송하네요. 다음에는 그럼 더 세련되게 만들어 볼게요. “맨날 책 안 팔린다고 하는데 신간은 어떻게 만드시는 거예요?” 허허 그러니까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도 팔고요, 돌반지도 팔아서 돈을 좀 마련해서요. 그리고 인쇄소에 사정사정해서 외상으로 미리 종이 땡겨서 인쇄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작비를 아직 지급을 안 했고, 신간은 내야 해서 돈 없이 외상으로 신간을 내고 있어요. 인쇄소 사장님께 매달 적금 붓는 심정으로 그렇게 후불로 갚는 중입니다. “신간을 내지 말고 이미 있는 책들 먼저 팔면 안 되나요? 신간을 내는 이유가 뭔가요?” 허허 그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신간을 내야, 구간도 같이 팔린답니다. 얼핏 듣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말이에요. 신간을 산 독자들이 느린서재의 이전 책들에도 관심을 갖고요. 신간이 마음에 든 책방들도, 느린서재 구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거든요. 게다가 신간을 내면, 초도부수라고 해서, 교보문고나 도매 거래처에서 50부, 100부씩 우선 사갑니다. 신간을 위주로 매장에 깔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간을 계속 내고 있어야, 구간도 가끔은 자리 비면 서점에서 깔아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구간이 쌓여 있어도 신간을 내야만 하는 것이 출판사의 운명인 것이죠. “느린서재에서 제일 많이 판 책은 무엇이고 몇 부나 나갔나요?” 허허허 그것은 출판사의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 (사실을 말씀드리면 에게···? 라고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솔직히 레터에서만 말하자면 제일 많이 판 책은 2500부 정도이고, 그 책은··· 허허 맞춰보세요.) “느린서재는 페미니즘 책만 내나요?” 허허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딱히 뭐 그렇게까지 엄청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 말한 건데요. 허허허. 근데 페미니즘이 뭐 문제가 되는 건가요? 내면 안 되는 주제인가요? 허허허. 누가 들으면 놀릴 거 같아요. 저 정도로 페미니즘 어쩌고 한다면 말이죠. 아니 근데 대체 페미니즘이 뭐길래 허허허.😜
제가 자주 듣는 질문들을 좀 정리를 해보았어요. 처음엔 상처가 되는 질문도 있었지만, 이제 웬만해서는 타격감이 없습니다. 무슨 질문이 와도, 이젠 차분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맷집이 생긴 것 같아요. 자 자, 드루와 드루와요. 무슨 질문이든요. 허허허 (맷집이 생겨도 가끔은 상처를 받긴 해요. 칼로 쑤시는 질문도 있잖아요.😫)
도서전 기간에 레터를 보내는 금요일이라 레터를 보냈는데, 저자분들에게 또 지인들에게, 아니 무슨 도서전 기간에도 레터를 보내고 그러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음, 저는 장금이의 심정이 되어, 날짜가 되어 보낸 것을 왜 보냈냐고 하신다면, 감이 감이어서 감이라고 한 것을···. 라는 대답을 드릴 수밖에요. (장금이를 아신다면 당신은 저와 비슷한 세대겠어요. 장금이가 대체 뭐야, 하신다면··· 당신은 엠지?😆) 이상한 고집인지, 저와의 약속이라서 레터를 보냅니다. 처음에는 느린서재를 알려야지! 느린서재 책을 홍보해야지! 라는 마음이었는데, 이젠 레터에 그런 마음은 없어요. 아무런 마케팅 목적이 없는 레터입니다. 목적 없음 레터. 구독자분이 처음에 그러셨거든요. 레터의 목적이 너무 안 보인다고요. 책 홍보도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대단한 정보성 메일도 아니고··· 분명한 색을 정해라, 라는 이야기도 들었었죠. 그런데 그냥 하루하루 책 만드는 저의 이야기를 터놓고 싶을 뿐이랍니다. 생각해 보니 레터는 저 자신을 위해서 쓰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 2주 동안 이렇게 살았네, 이런 생각을 했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보내는 편지거든요. 그러니 그저, 이 레터를 읽어주시는 것이 당신이 저에게 주는 큰 위로고 선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 레터를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고, 오늘도 레터가 길어졌네요. 긴 긴 넋두리를 언제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진이 나서 전기가 끊기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서 레터를 못 보내지 않는 한, 아마 레터는 계속 될 겁니다. 그럼 또 2주 뒤에 당신의 편지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정직하게 느리게 부지런히 책을 만들겠습니다. 편한 저녁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