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가게들을 보며
요즘 저희 동네를 보면 없어지는 가게가 정말 많아요. 문을 연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폐업한 가게들을 보면 쓸쓸합니다. 오늘도 지나가다가 문을 닫은 가게를 보았습니다. 텅 빈 내부, 아직 옮기지 못한 집기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종이들이 떨어져 있네요. 이곳에 불이 켜져 있었던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손님들이 왔다갔다하던 그 가게의 분주했던 모습, 그곳에서 무언가를 구경하던 저의 모습, 문을 닫기 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가게, 가게를 정리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집기를 옮기며 사장은 눈물이 났을까, 아님 덤덤했을까, 대출은 얼마나 했을까, 지금 그 혹은 그녀는 무얼 하고 있을까… 여러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참 별 생각을 다하죠. 어떤 날은 문 닫은 가게를 보며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합니다. 나도 문을 닫게 될까, 요즘 수없이 많은 책방들이 안녕을 고하는데, 나 역시 언젠가 ‘이번 달로 저는…’ 이라는 문장을 쓰게 될까, 책방을 정리하는 책방지기는 그 많은 책을 어디로 가져 갈까, 기간 내에 다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책을 많이 들였냐고 자신을 자책할까, 책방을 하며 책이 싫어졌을까, 왜 하필 책 같은 걸 좋아해서, 라는 생각을 했을까, 자영업 중에서도 책방이라니, 물장사가 마진이 최고라는데 다음에는 카페를 같이 해야 하는 걸까… 또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하여튼, 저는 어릴 때부터 잡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자주 구박을 받기도 했고요.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합니다. 길을 가다 혹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저희 딸 또래의 아이들을 보며,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계절 옷을 입은 이상한 아저씨를 보며,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저들의 사연은 무엇일까, 하고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그들은 자기 갈 길을 가겠지만 말이에요.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아지면 저는 자동적으로 1997년의 겨울, 1998년의 황량한 1,2월이 생각이 납니다. 나라가 망했다고 했던 그때가요. 저는 돈을 벌지도 않는 중학생이었는데도 아이엠에프의 기억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아지는 건 경제가 좋지 않다는 거겠죠. 그리고 그냥 이러다가 또 아이엠에프가 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어요. 제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걸까요. 그냥 체감하는 것 같아요. 눈이 기억하는 거겠죠. 어떤 날에는 지나가듯 영상을 하나 봤는데 그때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졌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아빠는 돈을 벌러 갔고요. 가게는 망하고 회사도 없어졌습니다. 계약직이라는 말도 처음 생겼지요. 회사에 들어가면 계속 그 회사만 다니는 거라 생각했던 시절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여섯 살 정도의 아이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습니다. 엄마는, 아빠는 저 아이를 다시 데리러 갔을까, 다시 데리러 가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까, 저 아이는 엄마랑 같이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저기서 계속 엄마 아빠를 기다릴 텐데… 몇 년 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계속 그곳에서 살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부디 엄마 아빠의 상황이 좋아져서, 부디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아이들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음,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영상에서 몇 년 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엄마 아빠가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꼭 데리러 올게,라는 말은 아이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되었겠죠.
90년대는 참 이상한 구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날로그가 남아 있던 시기이고, 그러나 모든 게 변하고 있었죠. 개인들에게도 핸드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신용카드를 마구 써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돌고, X세대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돌고요. 어느 드라마에서 김희선 씨는 철없는 X세대 며느리를 연기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라고 할 것도 없는데, 세상에 저런 며느리가 있다니, 라는 말들, 드라마는 흥행했고, 시대가 변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만 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만 원으로 일주일을 살면, 신청한 사람의 채무를 전부 갚아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꽤 인기가 많았던 기억이 나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한 대학생이 있었어요. 대학생인데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계속 하느라 빚이 어마어마했거든요. 과연 그녀가 일주일 동안 만 원으로 살 수 있을까가, 전국민의 이슈였습니다. 차비를 아끼려고 집에 걸어가던 나중에 너무 힘들었는지, 그 대학생은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이거 안 해, 라고 했지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사고 싶은 옷도 참고, 걸어가야 했던 그녀, 핸드폰 비용도 줄이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거는 전화는 안 하고 받는 것만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전화를 걸 때마다 돈이 나가는 요금제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녀가 부디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제발… 일주일만 버텨줘… 라고 기도를 했죠. 그녀는 일주일 동안 무사히 만 원으로 살았을까요? 결말을 알고 있지만 당신의 상상에 맡길게요. 제 기억이 안 맞을 수도 있어서… 결말이 궁금하신 분은 메일로 회신 주시면 제 기억대로 알려 드릴게요.(생각해 보니 이때도 악마의 편집이 있었어요.😂)
다시 아이엠에프 같은 게 안 오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개인들이 그때 불행해졌으니까요. 저는 중학생이었기에 용돈이 좀 축소된 정도로 타격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요. 엄마 아빠 눈치가 보여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 것도 막 조심스럽고 그랬습니다. <타이타닉>이 궁금했지만 그 영화를 보면 외화가 나가는 거라고 그래서 볼까 말까 또 한참 고민했던 것도 생각이 나네요. 개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망했고, 다시 회복하는 데 우리에겐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요. 계속 이렇게 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율을 보니 무서워요. 계속 이렇게 올라도 되는 건가? … 혹시 레터를 읽으시는 분 중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번주에 저는 거래처로부터 어음을 받았어요. 저에게는 좀 큰 금액의 어음이었는데, 받자마자 바로 어음할인해서 현금으로 바꿨습니다. 그 거래처가 부도가 나서 어음이 종이조각이 되면 안 되니까요. 사실 이 B 거래처는 결제 금액이 100만 원이 넘으면 무조건 어음을 끊어요. 초반에 저는 그냥 어음 만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그랬는데 요즘은 바로 할인해 버립니다. 그래야 마음이 덜 불안하더라고요. 당연히 거래처가 부도나면 안 되겠지만 요즘의 출판 시장을 보면 조금 불안한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 ‘송인’이라는 아주 큰 도매 거래처가 부도가 난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도서는 위탁 판매니까요. 미리 가져간 책의 금액들은 2~3개월이 지나야 결제를 받을 수 있거든요. 송인이 부도가 나고 많은 출판사들이 손해를 봤어요. 작은 출판사들은 더 그랬고요. 몇 천 권의 책 대금을 어찌 하나… 어디서 그 돈을 받아내야 할까요. 대책을 마련한다, 어쩐다 하고, 기사도 나고 그랬지만, 그 뒤로 제대로 보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네요. 아마도 흐지부지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그때는 회사에 있을 때라, 월급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처럼 제가 1인 출판을 하고 있었다면 저 역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죠.
아무도 부도가 안 나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97년을 기억하는 방식이에요. 누구도 망하지 않고, 누구도 부도나지 않고, 아주 가늘고 길게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버티는 거… 그게 제가 바라는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문 닫는 가게들이, 문 닫는 책방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망하지 않는 2024년, 잘 버틴 2024년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레터를 읽는 당신이 무슨 일을 어디에서 하고 있든지… 내일 아침 일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큰돈은 아니지만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정도로, 아주 아주 오래 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오늘도 우울해지고 말았네요. 밝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째서 저의 뇌의 회로는 이런 식일까요? 밝은 이야기는 제 취향이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면 … 그냥 대놓고 우울한 이야기를 쓸게요. 2주 후에도 본격적으로 침울하게 돌아올게요!😅
창고에만 책이 있다면 책들도 우울하지 않을까요? 레터를 읽으시는 구독자님들에게… 작은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아래 링크로 책을 구매해주시면 책들이 아주 많이 기뻐할 거 같아요. 책 값은 고정으로 하겠습니다. 레터를 읽으시는 분들에게만 드리는 링크이니… 외부 유출은 말아주세요.😂
https://forms.gle/k5f5vyP25DeZmz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