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하여
어김없이 2주가 또 지났습니다. 2주 사이에 3월이 왔고, 아이들은 개학을 했어요. 어쩐지 너무나 길었던 방학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큰애는 3학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제가 도와줄 것이 없을 정도로 아이는 또 자라 있더군요. 미술학원 하나만 다니는 방학이어서 그랬는지, 꽤 무료하고 지루한 방학을 보낸 아이는 개학을 무척 기다렸습니다. 전날부터 가방을 착, 준비하고 학교 가는 게 너무 기다려진다고 하더라고요. 학교 가는 게 좋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를 보며 또 깨닫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편지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터를 받으신 분의 피드백들을 꼼꼼하게 살펴 보았는데 말이죠. 저는 사실 자청을 원망한다는 취지의 글을 쓰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를 미워할 마음도 없고요. 그에게도 처음엔, 그런 의도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다만 『역행자』라는 책을 만든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그 책임을 물을 만한 자격은 없지만,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 책을 만든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청의 인기를 더욱 높여준 것이 『역행자』라는 책이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에 출판사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책을 담당한 편집자가 무슨 힘이 있어서 윗분들에게 “이런 책, 검증이 필요합니다. 이런 책, 낼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하기 싫어도 맡아야만 하는 원고가 부지기수로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더욱 마음이 헛헛합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제가 회사에서 가진 힘이 너무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지난번 레터는 ··· 저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담았어요. 너는 그런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는지, 검증을 제대로 한 책을 만들고 있는지,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는지···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아보고 싶었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명, 한 명, 그런 책임감 있는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점점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해 볼 뿐입니다.
지난번 레터를 보낼 때, 저는 ‘각양각책’ 행사장에 있었어요. 회사 소속으로가 아니라 느린서재의 대표로서 3일 동안 책을 팔러 나갔습니다. 혹시라도 레터를 읽으시는 독자분이 오실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저, 느린서재 레터 구독 중이에요’라고 말 걸어주시는 독자님을 기다렸는데, 쑥스러워서 그러신지 북페어 동안 그런 고백은 듣지 못했어요. 대신 아주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책을 소개하고 추천 드렸습니다. 북페어에서 책을 사지 않으셔도 아마도 저의 설명을 들으신 분들은 언젠가는 느린서재 책을 ‘픽’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한참동안 책을 살펴보는 독자 분들의 얼굴을 저도 관찰해 보았어요. 책의 차례를 유심히 살펴보는 분도 있었고, 본문 내용을 오래도록 읽어보는 분도 계셨고요. 저자 분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고민과 생각이 이어졌어요. 이번 북페어를 통해서 깨달은 점은, 독자들은 사실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직 그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고요. 나에게 맞는 책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하는 그 진지한 얼굴을 만나고 나니, 저도 더 진지한 마음으로, 독자에게 딱 맞춤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6,800원··· 점심 한 끼보다 조금 더 비싼 이 책이··· 한 시간, 아니 한 달, 아니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편집자 능력이 만렙은 아니지만, 독자 마음에 꼭 드는 책을 만들 수 있기를, 그 능력을 갈고 닦으면서 책을 만들겠습니다. 집에서는 수련하고 북페어에 나가서 독자들 의견을 경청하고 또 능력을 키우고··· 그렇게 무림의 고수가 되어 볼게요.
올해는 북페어에 될 수 있음, 많이 나가보려고 해요.(3월에는 제주 북페어에 선정되어서, 출장나갑니다. 3.30~31 / 한라체육관에서 열려요!) 혹시라도 뉴스레터를 구독 중이시면 북페어에 오셔서 슬쩍 말해주세요. 우리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내적 친밀감은 쌓여 있는 상태니까요. 제가 만든 굿즈를 더 더 많이 얹어드릴 수도 있는 거고요. 그동안 레터를 보내면서 늘 이 편지를 읽으시는 독자의 얼굴을 생각했거든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에 이 레터를 열어보실까 하면서요. 레터는 유용할까, 쉼이 되어줄까, 아니면 그저 쓸모없다고 느껴질까···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면서 레터를 씁니다.
아 사실, 북페어에 가서,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어요. 살짝 여러분에게도 소개해드리고 싶은 1인 출판사가 있는데··· 바로 ‘책나물’이에요.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 저는 ‘책나물’의 책을 참 오래 애정해 왔어요. ‘책나물’의 책 디자인이 예뻐서, 그 책의 디자인을 했던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작업도 했었어요. 어쩜 그렇게 제목도 잘 지으시는지, 다양한 컨셉의 책을 어쩜 그리 척척 내시는지··· ‘책나물’의 대표님이 궁금하던 차에··· 각양각책 북페어에 나갔는데 바로 제 테이블 앞에 ‘책나물’이 있지 뭐예요. 이것은 정말 데스티니··· 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속으로 꺅~ 소리를 질렀습니다. 명함을 들고 인사를 하러 갔어요. 이런 기회야말로 자연스럽게 친해지기 너무 좋은 타이밍이니까요. 그리고 첫 개시를 해드리기 위해 책을 사려고 했는데 선물로 그냥 주시기까지···! 제목도 너무 좋은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을 선물로 받고야 말았습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느린서재 책을 선물로 드렸고요. 북페어 동안 ‘책나물’ 부스는 그야말로 바글바글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책 리스트와 가격까지 잘 정리된 홍보물에, 누가 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나물’ 부스. 저는 그 옆에 가서 독자 분들에게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을 홍보했습니다. 이 책 정말 좋아요, 30페이지까지 읽다가 혹, 울 수도 있으니, 특히 조심! 하시라고요. 그래서 레터에도 살짝 대놓고 홍보를 해봅니다. 이 책에는 제가 좋아하는 멋진 ‘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언니’들이 더 많아졌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하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느린서재 책이 아니라 ‘책나물’ 책 홍보에 진심인, 이상 느린서재 대표였습니다. 역시, 책은 다른 회사 책 홍보할 때 더 신이 나는 법이에요. 왠지 느린서재 책 홍보를 할 때는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
1인 출판사가 오래 오래 버틸 수 있음 서로 좋은 거니까요. 그 마음, 이 레터를 읽으시는 분들은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또 책 만들고 2주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3월에, 특히 감기 조심하세요!
곧 나올 책의 이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