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란 늘 힘이 드네요. 어떤 말로 편지를 시작해야 할까 늘 고민이에요. 그래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오늘도 편지를 씁니다. 첫째의 방학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참 길었습니다. 돌아서면 밥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점심 시간이 다가오면 저는 국수를 자주 만들었습니다. 라면과 우동과 쌀국수와 짜파게티… 이 사이를 왔다갔다 한 방학의 점심입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좋아했지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한 끼를 차려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제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거든요. 밥이란 뭘까요? 가끔은 우리는 왜 하루 세 번을 먹어야 하는 걸까, 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영양 과잉의 시대니까 한 끼 정도는 안 먹어도 되지, 라고 합리화도 하지만… 저보다 아이의 밥을 챙기는 건 늘 숙제이고 괴로움입니다. 점심은 면이지만, 저녁에는 꼭 밥과 반찬, 메인 메뉴 하나를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밥이 정말 뭔지 모르겠습니다. 밥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밥 걱정을 하는 저를 보고 있으면 사랑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잘 먹어주면 기분이 좋고, 고맙고, 뿌듯한 이 마음, 그래서 부담감에 밥을 차리나 봅니다. 다음주면 방학도 끝이 납니다. 이 편지를 읽고 계신 엄마 독자님, 고생하셨습니다. 밥 차리고 애들 돌보는 일,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한 이 일, 제가 그 마음 알아드릴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방학에는 조금 독특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저희 아파트 동에 같은 학년의 큰아이 친구가 있는데 월요일은 그 아이의 집에서, 목요일은 저희 집에서 두 아이는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둘이 같이 오전에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월요일에는 그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고 놀다 오고, 목요일에는 저희 집에서 점심을 먹는 패턴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무사히도 월요일에 점심 걱정을 하지 않고 일을 보러 서울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점심 돌봄을 품앗이 한 거죠. 저도 그 친구의 엄마도 일하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고마운 마음으로 월요일과 목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방학 동안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고요.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뭔가 특별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게 두 친구는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서로의 사정을 알아갑니다. 언젠가는 또 싸우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갈라설지도 모르지만요. 그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방학 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친구의 어떤 점이 좋은지, 왜 혼자보다 친구랑 같이 하는 게 좋은지… 그런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겠지요. 친구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 같아요. 가족도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친밀하니까요. 저는 그 지점이 참 놀랍습니다. 어째서 친구에게는 무장해제되는 면이 있을까, 싶어서요.
이번주에는 저를 좀 괴롭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명 성공 포르노라는 겁니다. 남의 일에도 관심이 참 많은 저는 그 성공 포르노라는 것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먼저, 시작은 시조카의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된 조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카가 <프드프> 홈페이지를 보여주면서 이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웹을 알려줬습니다. 느린서재 웹도 이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서로 이야기를 하던 찰나… 자청의 <프드프> 홈페이지에서 별점 하나 테러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조카 말이 이제 자청은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청의 사기 행각에 대한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들었습니다.
출판 관계자들의 블라인드 오픈 채팅방에도 자청의 이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 검증을 제대로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출판사를 비난하는 이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자청의 <역행자>는 80만부가 팔렸습니다. 그리고 웅진은 그 해에 보너스 잔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유튜버들의 책을 만들어서 선방을 날렸죠. 혈안이 되어 다음 후보를 찾고 빠른 속도로 책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난 한 2년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포르노라는 단어는 참 여기 저기에 붙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공 포르노가 있다면 불행 포르노도 있을까요? 동정 포르노, 슬픔의 포르노, 거지 포르노… 다양한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자청의 성공포르노에 관한 문제는 바로 ‘난 이런 식으로 성공했다’로 포장을 한 뒤 그 성공 비법을 판다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가 진짜 월 천만 원을 벌고 그의 사업체들이 진짜면 되는 건데, 실제로는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가 운영한다고 했던 <욕망의 북카페>도 다른 대표가 운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이제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소문들 사이에서… 자청은 우리에게 사기를 친 겁니다. 그리고 그가 파는 그 성공의 방법이라는 것도 사기가 되는 거고요. 그는 우리에게 사기 강의를 팔았고 그는 일명 ‘성공’이라는 걸 허위로 만들어서 자신의 회사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낸 출판사는 그가 말하는 그의 수입이라던가, 그의 회사가 실체인지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블라인드 채팅방에서는 출판사도 공범이라는 비난이 나왔습니다. 팔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출판사의 그 안일한 태도가 결국 자청을 그렇게 키워준 거라면서요.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팔리면 그만이다, 팔린다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팔았으니 나는 모른다… 자청과 출판사의 이런 태도에 마음이 아주 이상했습니다. 저는 사실, 자청을 꽤 좋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청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비법서를 해킹했다는 그의 컨셉트에 반했지요. 그 비법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거라고 해서 더 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책을 읽고 자청처럼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은 따라해도 손해가 없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성공이 전부 허상이라면… 허상을 팔아서 그가 부를 이루는 것이라면 … 그걸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도 새로운 마케팅 비법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유행 중이라고 하고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원래 마케팅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요…
다른 물건은 그렇게 팔아도 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책은 그렇게 팔면 안 될 것 같아요. 안 팔려도 사기는 치지 말아야죠. 그게 책 만드는 직업인의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요…
저는 예전 회사에서 이런 요청을 꽤 많이 받았어요. 팔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게 회사 대표의 마인드였죠. 너네들 월급은 다 이렇게 팔린 책값으로 주는 거야… 라는 마인드. 하지만 언젠가 진실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교묘하게 그 시간을 지나갔다고 해도 언젠가는 독자들에게 외면받게 되더라고요. 외면 받은 그 마음을 돌리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포장을 해도 결국 알게 되니까요. 거짓말이라는 건, 가성비가 좋은 가면이지만, 쉽게 찢어지는 가면이니까요. 가면을 써도 진짜 얼굴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요.
자청 때문에 편지가 괜시리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 좋은 내용도 아닌데 씁쓸한 마음에, 괴로운 마음에…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다음 편지는 아이들 개학 후에 보내게 될 듯하네요. 다음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부디 마음이 무뎌져서 제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그러나 그럴 수가 없겠죠. 저란 사람은 안 그런 듯하다가도, 오지랖이 너무 넓어서…
2월이 가고 봄날에는 좋은 이야기로 편지를 보낼게요. 봄이 오네요.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에는 모두 행복해지세요.
딸이 그려준 저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