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같은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아니 이 메일은 연휴 중에 도착하겠어요. 저는 아직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은 새벽 시간에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레터를 쓰고 있어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레터를 완성하고 싶거든요. 저만의 자유시간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요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중인데요. 지난주에는 옆자리에 엄마가 없는 걸 알고 둘째가 금방 깨서 엄청 울더라고요. 이제 여섯 살이라서 엄마가 없다고 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침에 불현듯 저의 빈자리를 느꼈는지 엄청나게 서럽게 우는 바람에 그날은 새벽시간이 통째로 날아갔지요. 오늘은 제발, 아이가 깨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2월은 항상 보너스로 주어진 느낌이 있어요. 날짜도 다른 달에 비하면 몇 일 부족하고, 명절이 중간에 있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 방학도 끝나가니까 뭔가 새로 시작하기는 망설여지고 3월이 되면 하자, 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어요.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달이 2월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전 여전히 바쁜 시간을 명절 전에 보내고 있어요. 이 레터를 받는 당신은 2월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보너스 같은 2월에 저는 새로운 준비들을 하고 있답니다. 제가 요즘 많은 걸 의지하고 있는 다른 출판사 대표님에게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많은 걸 여쭈어 보고 있거든요. 편집에 필요한 인디자인부터 마케팅 기법까지…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지원 사업에도 일단, 응모를 했어요. 어제는 대한출판협회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도서전>에 지원했어요. 2월에 도쿄에서 열리는 도서전에 저 대신 협회에서 느린서재 책들을 가져가서 도서를 소개하고 수출도 하는 건데요. 어제는 열심히 도서 소개하는 문구를 작성하고 느린서재는 이런 책을 만듭니다~~ 라고 홍보글을 쓰는데 시간을 할애했죠. 이렇게 하다 보면 하나는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요즘 매일 지원 사업에 응모하는 중이에요.
북페어도 열심히 알아보고 신청하고 있답니다. 먼저 2월 23일~25일에 북페어가 있어요. <각양각책> 북페어인데 100개가 넘는 다양한 부커들이 참석해서 독특한 자신들의 책을 선보일 예정이래요.(홍대역 청년문화공간 JU) 저도 이번에 참여합니다. 레터를 받는 분들 중 그날 오신다면, 아는 척해주세요. 작은 선물 하나, 준비해서 갈게요. 제가 또 땅 파서 장사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일은 다 벌렸는데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하지, 라는 현실 자각 타임이 온다는 거예요. 책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신청해둔 행사들을 다 진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되면 걱정하자, 그때가 되면, 닥치면 다 하게 된다, 어떻게든! 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기도 하고요. 제일 큰 걱정은 북페어에 나가면, 애들은 누가 보지, 라는 거예요. 당장 2월에 나가는 북페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어요. 요즘은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일을 하려면 친정엄마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가야만 해…
저희 엄마도 가끔 그런 말을 해요. “넌 친정엄마, 시어머니 없음 일 어떻게 할래?” 계시니까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양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일하는 수많은 워킹맘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정이 생겼는데 여기에도, 저기에도 콜할 수 없을 때, 그럴 땐 워킹맘들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직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종종 거릴 때, 아이가 어릴 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거기에는 또다른 함정이 있었어요. 프리랜서지만 프리하지 못하다는 함정이죠. 집이라는 공간에는 살림이라는 또다른 유형의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물론 모른 척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살림이라는 또다른 구속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한다는 건, 사실 날아가는 새를 잡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살림을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닙니다.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충 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때로는 무지 힘든 날이 있어요. 우리 가족의 입을 거리, 먹거리를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펑크나지 않게 준비를 한다는 건… 대충해도 힘든 일이더라고요.)
아이들은 제게 엄청난 행복감을, 때로는 저에게 성취감을 주기도 합니다. 작년보다 키가 더 자라 있을 때, 양치질을 스스로 해낼 때, 아픈 엄마를 위해서 빨래를 개줄 때… 이렇게 아이들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해요. 그와 반대로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날도 많지만요. 제가 부재하는 시간에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 아이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각자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가자고 말했지만 부모는 아이와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시간은 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야속하게 흘러만 가네요.
출판계에도 결혼을 하지 않으신 분들이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딩크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어쩐지 알 것만 같아요. 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조금 알 것만 같아요. 아마도 그건 돈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무런 구속 없이 하고 싶다, 이 마음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도 종종 생각하거든요. 내가 하고 싶고, 내가 계획한 이 일들을 내 마음대로 하려면, 내 시간을 내가 계획한 대로 쓰려면… 나 하나 책임지면서 적게 벌고 적게 쓰고, 때때로 안 먹으면서 미친듯이 일을 해서 성과가 나려면… 그러려면 …? 아이가 있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된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버겁다는 생각도 듭니다. 애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버는 슈퍼 우먼은 되지 못할 것 같지만… 앗, 애들이 벌써 깨버렸어요. 등원시키고 점심까지 차려주고 와서 이제야 레터를 다시 씁니다. 새벽에 쓰기 시작했는데 레터를 완성하기가 쉽지 않네요.
어쩐지 2월은 너무 바쁘다로 시작해서 저출산의 원인까지 파헤쳐 보는 레터가 되었습니다. 열다책방의 찰스 사장님이 느린서재 레터는 ‘오늘은 한잔 했습니다’ 혹은 힘들다고 징징대는 레터, 둘 중 하나라고 하셨는데 오늘은 의식의 흐름에 충실한 레터가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날이 갈수록 횡성수설하는 능력이 느는 것만 같네요.
명절 준비로 모두들 바쁘실 거 같아요. 저는 내일(금) 새벽 5시쯤 광주로 내려갑니다. 부디 모두 막히지 않는 시간에 내려가시기를요. 그리고 행복하고 덜 기름진 명절 보내시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저는 광주에 내려가서 광주 책방들을 둘러보고 올 예정입니다. 샘플도 드리고 굿즈도 드리고, 명함도 드리고… 책방지기 여러분들, 우리 광주에서 만나요. 저는 사실 시댁가서 음식도 안 하고 스트레스도 없고, 때때로 스터디 카페에 가서 일도 합니다. 이번 설은 영업한다는 핑계를 대고 책방들을 돌아야겠어요.
전 오늘 밤(목)까지 밀린 일들을 싹 다 처리하고, 내일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시댁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면 < 문학처방전>을 추천드릴게요. 마음이 아플 땐, 책을 읽는 것만큼 큰 약도 없거든요. 설날 선물로, 책보다 좋은 건 또 없으니까요. 시어머니께도 한 권 선물로 드리면 어떠려나요?
진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