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이라는 연습
오늘은 금요일, 눈이 오고 있네요. 계속 포근했던 날씨 탓에 이렇게 빨리 눈이 올 거라 생각 못 했는데, 날씨란 언제나 인간의 예측을 아주 간단하게 빗겨 갑니다.
이번 주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홍현진 작가님이 느린서재 뉴스레터는 ‘짠내 장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일관되게 짠내가 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장르라고 해주셨는데, 그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저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 중인가 봅니다. 하다하다 어디까지 더 짠내가 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지난주와 이번주에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민망스럽게요. 제가 하도 힘들다 힘들다 해서 그런지,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이제는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우울한 이야기보다 고마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2년 전, 1인 출판을 하기로 하고, 아주 오랜만에 제가 연락할 수 있는 저자들 모두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이러저러해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혹시 이러저러한 기획으로 같이 원고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메일을 돌리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절반의 저자들에게는 바쁘다, 다음에··· 등등의 거절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절반의 저자들에게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분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같이 하겠다는 긍정의 답을 준 것일까, 싶어요. 거절할 이유가 더 많은데 말이죠. W라는 회사 명함 속 최아영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최아영에게, 믿을 게 아무것도 없는 신생 출판사에 오케이를 해준 저자들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당시에는 거절 메일에 더 집중한 터에 마음에 기스가 났지만, 지금은 감사한 저자들에게 제 마음을 집중하는 중입니다. 그 저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버텨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물론 다짐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요.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거절 메일을 받았던지요. 저자뿐만 아니라, 서점에 보내는 책 입고 요청 메일이나, 유튜브 섭외 메일 등에도 늘 거절 메일을 받지요. 추천사 부탁에도 거절은 늘 기본값이죠. 은행이나, 신용보증재단 등의 거절 전화, 승인 불가를 늘 받습니다. 거절이라는 것도, 자주 받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대가 거절을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달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노가 아니라, 예스, 라는 말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도 짠내 장르가 되어가고 있네요…!)
어제는 신간을 등록했습니다. 이번에 같이 작업한 이동원 피디의 첫 책을 11년 전의 제가 만들었었습니다. 그러한 인연으로 2년 전, 출판사 신고를 하고 문자를 보냈었어요. 11년 전, 대학생이었던 이피디는 지금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연출 피디가 되어 있었습니다.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문자를 썼다 지우면서 이피디가 나를 기억 못 하면 이게 무슨 🐶망신이야… 보내지 말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억 못 한다고 하면, 그냥 뻘쭘하고 마는 거지, 라는 생각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제가 지금 독립을 해서 이러저러한데 혹시 같이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요.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뭐… 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얼마나 입속이 타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이전에 연락했던 다른 저자분이, 저를 전혀 기억 못 하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때 그분에게 제 문자는 보이스피싱보다 못한 문자였을 거예요. 저는 그분을 아는데 그분은 저를 기억을 못 하시니…!😅)
다행히도 이피디는 저를 기억했습니다. 휴, 일단 한고비 넘겼습니다. 그리고 또 다행으로 이피디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피디는 저에게 “제가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피디로 산 지 10년 차이지만… 아직 수사 중인 사건들이 많아서 날것 그대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피디와 헤어졌습니다. 생각해 보겠다는 절반의 희망을 남긴 채로요. 책을 만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 그래도 날 기억해줘서 다행이라는 마음,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다시 이피디를 만나게 되었고,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아직 가제가 적히지 않은 계약서를 첫 만남 때 이피디에게 슬쩍 주고 왔었는데, 그는 거기에 가제를 적어서 왔더라고요. 이피디는 그냥, 이렇게 사는 어떤 사람도 있다는 걸 한 번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월급쟁이 이피디의 사생활>을 온라인 서점에 등록했습니다. 어제 이피디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때, 쿨하게 계약서 작성해줘서 고맙다고요. 이피디는 제게 ‘따뜻한 겨울이 되셨으면’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저자 섭외 비하인드 스토리가 된 것 같네요.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던 저는 그날 저녁 화장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화장실 앞에 서서 한참 고민을 하는 제게 딸이 ”엄마, 뭐해? 깜깜한데…?”라고 했던 게 생각이 나네요. 별걸 다 기억한다고, 어떻게 다 기억을 하냐고 가끔 제 반려인이 물어보지만… 그런 순간을 어떻게 기억을 못 하지, 라고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눈이 그쳤습니다. 길이 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11월 29일은 느린서재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인스타에 많이 놀러와 주세요. 빼빼로를 기프티콘으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내일은 남성역 근처 <지금의세상>에서 1시에, 변한다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볍게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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