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와 사업가
어느새 11월입니다. 어느새 2주가 또 지났고요. 10월이 어떻게 갔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북토크가 많이 잡혀 있기도 했고, 느린서재 이름으로 처음으로 플리마켓에 나가보기도 했던 10월이었습니다.(언니공동체 언니들, 직접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10월은··· 정말 저를 갈아 넣은 한 달이었던 것 같네요. 주말마다 일정이 있어서··· 단풍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가을을 보내는 중입니다.
저는 늘 라디오를 켜두고 일을 하는데요, 10월 내내 라디오에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이 노래가 정말 많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노래를 듣다가 저도 모르게 울컥··· 아··· 왜 이러는 걸까요? 가을을 타는 걸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일만 하는 제 자신이 불쌍했던 걸까요? 혹 외로웠던 걸까요?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라는 가사에서 저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일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2023년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그동안 달려온 시간들을 다시 되돌려 봅니다. 봄부터 여름··· 저자분과 함께 제주도 책방 투어를 하던 시간···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던 책과, 제가 생각한 것보다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던 책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책들··· 가족들이 제게 했던 말들과 저자분들이 제게 전해준 응원 혹은 조언들·· 저자가 사비를 털어 직접 만들어준 굿즈부터 지방 서점들을 주말마다 돌면서 느린서재 책을 홍보하는 마케터까지··· 잘하고 있고 앞으로 잘될 거라고 항상 응원해주는 느린서재 전속 디자이너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책을 팔 거고, 자기가 사실은 영업왕이었다고 말하는 저자분까지···.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그동안 받은 사랑과 응원이 정말 많구나 싶네요. 이렇게 응원과 지지를 많이 받는데··· 그동안 참 고마운 분들이 많았구나, 싶습니다. 10월이라서 그런가 괜히 센치해지고 고맙고···. 아님 혹시 갱년기일까요? 제가 그동안 너무 징징거린 것만 같아서 이제는 좀 밝은 내용으로 레터를 써보려고 하는데요,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징징거리는 편지는 이제 그만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면, 꼭 회신을 주셔요. 늘 각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0월에, 원고 하나를 메일로 받았습니다. 음··· 그 원고를 읽으면서 뭐랄까요, 저자분은 어찌 느린서재를 알고 메일을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땐, 그 유명한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온 우주에 그 에너지를 보내면 그게 결국 내 앞에 온다는 그 시크릿 법칙 말이죠. 제가 그 원고를 제 메일함으로 끌어들인 걸까요? 원고는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이런 제 생각을 알면 안 되겠지만, 이건 판매와 상관없이 무조건 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원고였습니다. 사실 많이 울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아이패드로 원고를 읽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제 앞에 앉은 사람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패드를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꺽꺽거리며 진정이 안 될 정도로 울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운 적은 최근 들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우는 바람에 사실 원고를 다 읽지도 못하고··· 그 챕터를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 오늘은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죠. 집에 와서도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습니다.
남은 원고도 다시 봐야 하는데, 쉽게 패드를 열 수 없더라고요. 이 원고 너머에 있는 저자분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어 내려갈 때의 용기와 그 심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글이란 뭘까요. 누군가를 웃기기도 하고 누군가를 울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는 글. 글이란 참 가볍고 참 무겁고, 글이란 참 위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만지고 있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들어야 할까··· 하고 고민을 좀 했습니다. 글과 종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책···
글을 읽고 그 글을 쓴 저자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을까, 어떤 마음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이게 돈이 될까, 아닐까를 생각하는 건, 사실 지금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가나 경영자의 마인드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당연히 저의 밥벌이니까, 당연히 돈을 벌어야겠지만, 책을 내는 일은 완전히 돈만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류의 책도 있다는 걸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네, 계속 땅 파며 장사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책다운 책을 만들어보자, 이 글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을 책을 만들어보자··· 였습니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사업가가 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저는 사업가가 아닌 편집자이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제 창고에는 책만 가득 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를 생각하면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음에 파장을 일으킬 그런 책을요.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그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다행 아닐까요.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저는 제 할 일을 다 한 거겠죠. 더 더 많이 보다, 더 더 진실되게 가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최근에 만들었던 책, 『가장 보통의 차별』 프롤로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또 치사한 나지만, 제 일만 하며 살기에도 피곤한 세상에서 다정을 굳이 행하려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글을 썼다. 차별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해도 때론 실패하고 또 좌절하기도 하는 보통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한다’라고 단 한 사람만이라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욕심을 내본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한 ‘단 한 사람’이라는 그 단어에서 저는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이 책은 차별하지 말자,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실패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라는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요. 저자의 이 마음은 책을 만드는 제 마음과도 비슷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 글을, 당신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음을 알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책을 만듭니다.
오늘도 어쩐지 진지해진 것만 같네요. 언젠가는 재미있는 편지로 ··· 오겠습니다.
2주 뒤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