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피는 어떻게 일하는가?
오늘은 지난번에 예고해 드린 대로 인프피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편지를 보내볼까 합니다. 음, 저는 인프피입니다. 아… 그게 아니라 요즘은 제가 내향성 인간이 아니라 외향성 인간인 것 같아요. 그럼 엔프피가 되는 걸까요. 음, 그러나 때로는 I, 때로는 E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저는 지내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실 것 같아서 일단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린다면… 인프피들이 계획을 안 세우는 건 아닙니다. 인프피도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별 타격이 없다는 게 바로 인프피인 것 같아요. 어떤 분이 설명하시는 걸 들었는데 P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고 J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P라고 해서 계획을 안 세운다… 이런 오해는 금물입니다.
일단, MBTI를 그렇게 많이 신뢰하는 편은 아닙니다. 살다 보니 어떤 날은 P지만 J인 경우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 반려인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너 T야?”거든요. 제가 무슨 말만 하면 너 T냐면서… 저를 그렇게 구박을 합니다. 저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 진지하게 대답하면 T라고 놀림을 받습니다. 심지어 저의 딸도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줘, 라면서 삐쳐버리곤 하거든요. 남편은 저에게 애가 원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면서 저를 구박하는데, 저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MBTI 테스트를 하면 저는 인프피입니다. 그러니 참 이상할 따름이죠? 저도 종종 저에게 물어봅니다. 아, 나 T인가? 하고요. A는 A고 B는 B인 세상은 명확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니까요. 그러네, 정확한 건 아름다운 거지. 그렇지만 저는 또 무용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니… F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실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요즘 유행하는 것이니, 아무도 안 궁금하셔도 굳이 제가 일하는 방식을 살짝 이야기 드릴까 합니다.
저는 대략적으로 2개월이라는 출간 일정을 정해둔 다음, 인쇄 일정을 미리 찍어둔 다음 역으로 계산을 하여 일주일 단위로 계산을 합니다. 인쇄일로부터 3일 전에는 모든 데이터 완료, 그 일주일 전에는 표지 완료, 그 일주일 전에는 대략 2교지 완료, 그러다 보면 이쯤에는 작가님에게 이러저러한 원고들을 받아야 한다… 라는 대략적인 큰 그림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다 보면 실제로는 출간까지 1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2개월 반이 걸리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 어떤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표지가 나오기로 한 일주일 전에, 표지가 안 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인쇄일이라고 정한 날이 빨간 날인 줄 모르고 있다가, 한글날에 쉰다는 걸 알고, 예상보다 책이 늦게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대략 2개월이라는 일정을 정해두지만 정하면서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뭐 대략 2개월 반 안에서 움직인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사실 어떤 작가님들은 오히려 저를 더 닦달하시기도 합니다. 표지는 지금쯤, 마지막 교정은 언제쯤, 인쇄는 이때쯤 등등 저보다 저의 일정을 더 타이트하게 움켜쥐고 계신 분들도 있죠. 그러면 저는 또 거기에 맞춰서 오늘은 여기까지 했고, 내일은 여기까지 할 예정입니다, 라고 일정을 보고 드립니다. 그렇게 해야 그분들 마음이 편하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한편 그렇지 않은 저자 분들에게는 제가 오히려 닦달을 하죠. 이때까지는 사진을 주셔야 하고, 내일까지는 에필로그를 주셔야 하고, 이때까지는 표지를 결정하셔야 하고… 저는 저자 분들의 성격에 맞게 일정을 조정해서 그때 그때 다르게 보고를 드리곤 합니다. 그러면서 저도 생각하죠. 이 저자 분은 아마도 T일 거야, 이 분은 아마도 F일 거야… 라면서. 그래도 그런 걸 절대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정말 너무 로보트처럼 일하시는 분이 있어서, 제가 혹시… 라고 물어보면 맞아요, 저 TJ거든요, 먼저 이실직고 하시는 작가님도 있고요. 하지만 모든 인간의 유형이 어찌 MBTI로 정의되겠습니까, 모두들 아시겠지만, 100인이면 100인의 색깔이 있는 걸요. 사람은 상대적인 생물이라서, 그 시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변신을 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F이신 작가님은 저를 보면서 T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고요. T인 작가님은 저를 보면서 이 편집자는 분명 F구나, 라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사람은 참 상대적이다… 라는 말을 편지에서 전하려고 했답니다. 싱거운 결론인가요? 😂 제가 뭐 그렇죠. 하하
제가 얼마 전에 놀랐던 건, 저에게도 어느 정도 관록이 붙었는지 아주 신속하게 일을 해결한 적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고민해서 나온 표지 시안이 있었는데 다섯 가지 시안 전부, 저자 분 마음에 안 든다는 피드백을 받고 말았어요. 그래도 몇 개는 제 마음에 들어온 것도 있었는데🙄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일단 저는 빨리, 아주 빨리 다른 표지를 만들기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미친듯이 표지에 들어갈 그림들을 골랐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채널을 뒤지고 또 뒤져서 표지가 될 만한 그림을 골라냈죠. 그렇게 미친 듯이 해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요. 표지가 그날 안으로 결정이 안 되면 인쇄가 뒤로 밀리게 되는 이 책, 이 책은 다른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은 책이라서, 그 달 안에 무조건 나와야 하는 책이었거든요.(안 그러면 지원금을 뱉어내야 합니다.😅) 그날이 표지를 정해야 하는 데드라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반드시 오늘 표지를 정하고 만다! 라는 마음으로 최상의 그림을 골라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그림에서,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어요. 그렇게 해서 표지를 하루 만에 다시 만들고, (저의 미친 듯한 일정에 동참해준 디자이너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 저자 분에게 보여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저자 분도 마음에 들어하셔서 오케이! 어쩌면 저의 열정적인 모습에 마지못해 오케이를 하신 걸 수도 있지만요. 그렇게 해서 재시안을 하루 만에 만들어 인쇄를 넘긴 책이 있었는데, 인쇄를 보내고 나서도 디자이너랑 저랑 한참을 바라보고 웃었습니다. “우리 정말 미친 것 같아요. 표지 재시안에 들어갈 그림을 찾고 다시 시안을 만드는데 하루만 걸리다니!!“ 이건 정말 벼랑 끝에 몰린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정이라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건지…!
얼마 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말이죠. 제가 보내는 이 뉴스레터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에나. 그러면서 "너의 편지를 읽는데 음성인식이 되는 것만 같아. 너의 말투랑 너무 똑같아"라고 말해서 또 놀라고 말았죠. 저는 항상 어떤 분들이 저의 편지를 읽을까 궁금했는데… 친구의 말로는 편지랑 제 말투랑 똑같다고 해요. 그러니 여러분, 혹시나 다음에 저를 만나시면 아마도 무척이나 친근하실 거예요. 이 편지의 바로 그 사람이랑, 싱크로율이 정확히 일치하거든요.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들을 곧 만나게 되기를 기다리며…
11월에 <굶주린 마흔의 생존 독서> 북토크를 전국적으로 잡아 두었습니다. 멀리는 못 가지만 경기도 서점들에는 저도 저자 분과 같이 갈 예정이에요. 변한다 작가님은 북토크는 알아서 혼자서 할 테니 제발 따라오지 말고 다른 책 만들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갈 수 있는 곳에는 가야죠. 저도 독자님들을 만나고 싶으니까요! 대구와 대전, 거제도, 그리고 판교에서… 만날 독자님들을 생각하며! 곧 만나요!
*공지 : 내일 토요일, 망원 이후북스에서 4시에 조하나 기자님의 북토크가 있습니다. 망원 근처에 계시다면, 놀러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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