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눕는 이야기
“오늘 밤은 맥주가 당기네요.”
저랑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에게 제가 종종 밤마다 보내는 카톡이에요. 사실 여름날에는 늘 맥주가 당기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요즘에는 참 다양한 이유로 밤마다 한 잔씩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와인 한 잔을 때려 넣고 이 글을 쓰는 중이네요. 그래도 딱 한 잔만 하고 자보려고 합니다.😅
오늘 밤에는 맥주가 당긴다고 보냈더니 디자이너는 제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술로라도 풀어야죠.”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제 마음을 알아주는 그녀의 카톡에 울컥합니다. 저도 그녀도 다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술로라도 풀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녀도 딱 한 잔씩···! 하고 자려고 합니다. 저와 그녀는 둘 다 프리랜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노력한 만큼 번다, 라는 공통점도 있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도 하고 있는데, 그리고 실제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있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도 저와 그녀의 공통점이라고 해야겠네요. 진짜, 벌고는 있는데, 취미생활도 안 했는데···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명품백도 안 샀는데!
술로는 무엇을 풀어야 할까요? 오늘은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책 주문이 0권이었습니다.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각각의 서점에서 출판사로 오늘의 책 주문에 대한 발주서를 보내는 시간입니다. 사실 이 두 시간 동안의 책 주문 권수가 저의 하루 기분을 좌우하곤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1권, 2권은 있었는데··· 오늘은 0권이라니···.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아니야, 아직 팩스를 보내지 않은 곳이 있을 거야, 추가 발주도 하니까··· 왜 팩스가 안 오지···? 메일함 제대로 본 거 맞아? 아까 팩스 왔는데 확인 못 한 거 아니야? 다시 한 번 팩스함을 봐보자. 아무리 전자 팩스함(앱)을 뚫어져라 보고 있어도 새 팩스는 도착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발주 0권. 싫어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은 한 권도 못 팔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슬퍼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일 또 팔면 되니까요. 언젠가는 팔면 되니까요. 안 되면 폐지로 팔면 되니까요. (폐지 처리하면 아주 약간 돈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사실 ··· 작년에도 딱 가을 즈음에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와 함께 일하는 마케터가 있는데, 오늘 그분과 통화를 하면서 저는 막 자랑을 했습니다. “오늘 발주가 0권이라니까요!? 하하하. 내일은 금요일이니까 좀 나가겠죠? 하하하. 휴가가 끝나서 그런 거겠죠? 하하하. 사람들이 휴가 때 돈을 다 써서 그런 거겠죠? 하하하.”
이런 날은 같이 곱창에 소주 한 잔 해야 하는 건데··· 라는 말을 마케터가 해주면서··· 급 곱창하고 소주가 당기더라고요. 재워야 할 아이들만 없다면 당장에라도 낮술을 할 텐데 말이에요. 언젠가로 기약을 한 뒤 저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케터는 스타벅스 카드에 만 원씩 충전해서 각 서점 엠디들에게 돌린다면서, 책 홍보 열심히 할 테니 힘을 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마케터들은 종종 서점에 가서 이렇게 뇌물을 돌립니다. 스타벅스 선불카드부터 핸드크림, 향수, 쿠키 및 케이크 등등··· 신간 좀 매대에 잘 깔아달라고 여러 가지 뇌물들을 그때그때 구비해서 서점에 찾아가지요. 뇌물이 크면 클수록 신간 매대에 좀 더 오래 책이 누워 있을 수 있으니 말이에요. 그리고 가끔은 그냥 빈자리에 느린서재 책들을 서비스로 깔아주기도 하거든요. 오늘도 세 장의 스타벅스 카드가 느린서재 책들을 좀 더 매대에 오래 누워 있게 했으려나요. 혹시라도 주말에 교보문고에 가신다면, 매대에 느린서재 책들이 잘 누워 있는지 보고 제게 제보 좀 해주세요.😁
책의 실물을 만져보고 싶은 독자들은 아마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의 물성을 확인할 거예요. 저도 책의 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밀리의 서재>에 매월 만 원씩 내고 있으면서도 전자책은 잘 안 보게 됩니다. 꼭 읽고 싶은 책은 종이책으로 구매해서 보게 돼서 자꾸만 서재가 꽉 차는 중···. 사실은 서점에 가서 실제로 책을 만져 보고 표지를 보게 되면 원래 사려고 한 책 말고도 또 책을 사게 되지 않나요? 그래서 매대에 책이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하답니다. 서점 매대에 누가 누가 제일 오래 누워 있나··· 가 책의 자부심인 거죠.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책인데도 아직도 매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책들이 있는데··· 그런 책들을 보면 너무나 부럽고 시샘이 납니다. 느린서재 책들은 이제 서가에 꽂혀서 예쁜 앞표지를 독자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죠. 1년 동안··· 저렇게 누워 있고 싶다··· (저 말고 책이요.😆)
물론, 강제로 매대에 책을 눕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을 내고 광고를 하는 방법이지요. 광고를 해서 책이 누울 자리를 사면 30권이든, 50권이든 매대에 누울 수가 있지요. 하지만 매달 월세를 내듯, 그 자리 값을 내야 하는데··· 그러다가 월세를 못 내게 되면 책들은 반품이라는 무서운 이름을 달고 다시 책 창고로 돌아오게 됩니다. 몇 번 그렇게 월세를 내고 책들을 매대에 깔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책 판매대금보다 그 자릿값이 더 나가서··· 그 전략을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광고라는 게 중독 같아요. 이번 달에 해보면 다음 달에도 하고 싶고, 어떻게 빚내서라도 하고 싶고, 이번 달이 강남점이라면, 다음 달에는 광화문점에 하고 싶고··· 이게 정말 마약 같은 거라서··· 정말이지 끊기가 힘들답니다. 그래서 제가 9월 달에는 일산 교보 문고에 광고를 넣었지 뭐예요. 3월 이후로 광고를 꽤 오래 참았는데··· 이번 달에는 한 번 신간들로 광고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니 주말에 나들이 계획하시는 독자님들··· 느린서재 책들 확인하러 일산 교보에 가시지 않으렵니까?(옛날 사람...)
오늘 레터는 어쩐지 또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이제 슬픈 이야기는 그만하려고 해요. 슬픈 이야기 그만, 행복하고 밝은 이야기들로 다음 레터에서 찾아올게요.
지난 번 레터에서 배송비와 책 가격에 대해서 살짝 푸념을 했었는데요. 역시나 이번 신간이 배송비가 붙어서 그런 건지··· 주춤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찾아보니, 인터파크 도서(네이버스토어)는 만 원만 넘어도 무료배송을 해주고 있어요. 여러분, 여기 링크를 걸게요. 배송비가 아깝다면 인터파크 도서로 가는 겁니다!
*북토크 소식
- 9월 13일 : 서점 #관객의취향에서 <콘텐츠 속 인물에 대한 글쓰기로 나를 이해하는 법> 이라는 주제로 홍현진 작가님과의 북토크가 진행됩니다. 자리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니 서두르세요. (수요일, 7:30)
- 9월 23일 : 천안의 서점 북하우스에서 《그냥 좋다는 말》 이현정 작가님과 함께하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의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선선한 가을날의 토요일에 만나요. (토요일, 2:00)
*<슬픔 속의 기쁨>이란 편지를 딸이 주었습니다. 어느 날의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꼭 찾아보려고요...! 레터를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슬픔 속의 기쁜 일을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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