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위가 주춤하는 듯합니다. 어젯밤에는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자니 아, 드디어 시원한 바람이 부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지난 번 레터를 보낸 뒤, 두 통의 회신을 받았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제가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냈는데, 의외로 그 일상이 재미있었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물어보셔서, 제가 요즘 재미있게 읽었던 세 권의 책을 알려드렸습니다. (《마침내 운전》 《살고 싶다는 농담》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저에게 오아시스 같은 책이었습니다. 틈틈이 아껴 읽은 8월의 책인데··· 혹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읽어보세요. 《살고 싶다는 농담》, 이 책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살아야겠다, 버텨야겠다, 어떻게든···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고, 그 이야기 덕분에 더 인간적인 면이 느껴졌다는 피드백에 좋아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아, 내가 좀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서 일하고 집에서 일하다 보니, 누군가의 피드백을 받는 일이 그리웠나 봅니다. 때로는 그 피드백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그 한마디가 사실은 그리웠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 게 맞는지,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누군가도 제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는 그 믿음이 어쩌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너무 멀리 걸어간 뒤에, 아무도 없구나, 하고, 혼자임을 늦게 알아채버릴까 봐 종종 두렵기도 합니다. 처음 1인 출판을 할 때의 그 자신감은 슬며시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길을 잃고 혼자서 말도 안 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땐 제게 소리쳐 주세요. 거기가 아니야— 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원 위치로 금방 달려올 테니까요. 매일 매일 다짐해봅니다. 매일 매일 주의해봅니다. 매일 매일 의심해 봅니다. 제 선택은 자유롭게, 그러나 독선이나 고집이 아니었음 하는 바람으로요.
오늘은 사실 책 가격과 온라인 서점의 무료배송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온라인 서점이 무료 배송을 모두 없애고 정가에서 10% 할인 후 15,000원 이상이 되어야 무료 배송을 해주는 것으로 시스템을 바꾸었거든요. 정가에서 10% 할인 후에도 가격이 15,000원 이상이 되려면 정가는 최소 16,700원이 되어야 합니다. 10% 할인이 되면 15,030원, 이래야 무료배송이 되거든요. 무료배송이 안 되는 책은 과연 판매에 영향을 받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책이 배송비를 내야 한다면, 독자들은 지금 당장 책을 사는 것을 미루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료배송이 될 수 있도록 정가는 페이지 수나 제작비와 상관없이 16,700원으로 책정해야 하는 걸까··· 원하는 책이라면 배송비를 채우기 위해 다른 책도 함께 사게 될까··· 이 물음들 사이에서 저는 계속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간을 준비하면서 16,000원과 16,700원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16,000원이 이번 신간의 가격으로는 적정선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무료배송이 되지 않기에··· 독자들이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결국 16000원으로 정했습니다. 무료 배송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러나 지금, 제 마음은 사실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16,000원이든, 16,700원이든··· 지금 제 마음엔 파도가 치고 있거든요. 그딴 게 다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거든요. 정말이지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저는 참으로 어리석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은, 상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이,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 일이 책 만드는 일과 무슨 상관일까,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도 참담한 일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짐작하시는 그 일, 바로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사실 그 일 때문에 너무도 집중이 안 되고, 마음이 저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실시간으로 뉴스 속보만 보고 있는 게 말이죠. 마지막까지 제발, 그 버튼을 누르지 말아주기를, 양심적으로 ‘전 못 하겠습니다’, 라고 ‘도쿄전력’의 책임자가 나서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조직 속의 인간이란···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건지··· ‘악의 평범성’이란 이런 걸까요. 시키니까, 월급을 받으니 어쩔 수 없이 한다···? 그렇다면 개인은 왜 개인으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아니, 머리는 왜 달고 있는 거야··· 이건 월급과는 상관없는 문제인데···.
밤새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오염수를 희석하면 바다에 방류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처리수는 아무 이상이 없다, 그 물을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어떤 과학자의 기사를 읽으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그들은 모르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자의 말대로 그 물은 정말 깨끗할지도 모르겠습니다. ALPS로 다 걸러진 물이니 아무 이상이 없을 수도 있고요. 생태계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괜히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안전하다면 일본에서 먼저 수영장으로 써보시지···) 과학자들이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말이니까요.
우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재앙이 될지도 모를 실험을, 가장 어리석은 실험을, 지금 바다에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그 결과를 모르는 일이니 말이에요. 리허설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에요. 이론상으로 그럴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던 일들이, 실제로 그 결과는 참담했던 일들도 있으니까요. 세상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지구의 일들이란 인간의 예상을 아주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니까요. 인간이라는 오만한 존재가 지구를 이토록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없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토록 집중이 안 되는 마음을 여기 레터에 쏟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이 날을 아주 오래도록 후회하겠죠. 이미 방류는 시작되었고, 모든 건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어떤 책을 만들며 앞으로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지구와 저와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 생각도 안 하는 머리를 망치로 깨는, 내 안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구가 버텨줄 때까지, 제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그런 책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거창하지 않게, 딱 한 사람이라도 변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심각해버리고 말았네요. 당분간은 많이 우울할 듯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부디 그런 일을 꼭 찾았으면 합니다.
모두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