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앞에 책이란···
비가 많이 왔습니다. 모두 비 피해 없으신지요? 그보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받은 분들이 아이들의 방학기간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방학과 여름, 그리고 폭염··· 이번 여름이 유독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저뿐일까요? 여름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방학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름에는 우리 나라가 모두 다 방학을 한다면··· 어느 국회의원이 이런 법을 좀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1년에 한 번은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 방학이 좀 필요하니까요. 사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그 아이들을 돌볼 엄마들도 아빠들도 방학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같이 방학하고 좀 쉬면서 여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모두 다 같이 두 달만.
이번 여름, 비가 많이 오고 여러 사고들이 있었어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일이 이번 여름에 많이 일어났네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인 그런 일들이요. 그리고 저는 어젯밤,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으로 초토화를 맞은 저희 집 창틀에 고인 물을 열심히 닦아냈습니다. 바람이 북풍이라서 저희 집 창을 계속 때리고 그 바람 때문에 창틀에 고인 물이 나가지를 못하더니, 그 고인 물이 넘쳐서 방안으로 흘러들어오더라고요.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파트에 사는 데도 집에 비가 들이쳤다는 말이지요. 저희 집 앞에는 작은 갯벌, 인천 바다가 보이는데요. 바다 앞에 살아서 그런지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마다 그런 자잘한 피해들을 입고 살아야 한답니다. 이것도 바다 앞에 살지 않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죠.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아파트에 유독 부식이 심해요. 금도 많이 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고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염분으로 인해서 건물들이 이렇게 쉽게 손상이 된다면, 그리고 비가 올 때마다 이렇게 물이 들이치고, 기후 위기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바다 앞에 지은 아파트들은 몇 년 뒤, 사라질 텐데. 그렇게 아파트 침수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요.
어제 창틀에 고인 물을 닦아내면서 파주에 있는 창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번 태풍에 책 창고는 아무 피해가 없을까,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인쇄되는 책들은 대부분 파주에 있는 책 전문 유통 창고에 보관이 되고, 그 창고에서 각 서점으로 나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파주의 깊고 깊은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가 나와요. 그리고 그 창고에는 정말 어마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지요. 천장이 안 보일 정도로 높고요··· 가득 쌓여 있는 책들··· 언제 다 나갈지··· 곧 독자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책들···(한 달 안에 이 창고를 벗어나는 책들도 있고, 1년 동안 못 벗어나는 책들도 있지요···흑😂) 교보문고나 온라인 서점, 동네 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저는 다시 이 물류 창고로 주문을 넣고 그렇게 모아진 발주 내역은 파주에서 각 서점들로, 오전에 신속 정확하게 배송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에 물난리가 난다면··· 물에 너무나 취약한 책들은 모두 다 젖어버리게 되고 글씨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형체가 되겠죠.
책은 물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러나 책은 불에도 너무나 취약하지요. 물이든 불이든, 젖거나 타게 되면 금방 그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 나약한 종이들··· 그 종이에 열심히 기록을 하고 무엇이든 남기는 인간들··· 천 년 전에도, 2천 년 전에도 인간은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했고, 동굴에다가, 혹은 그릇에다가, 나무껍질에다가, 거북이 등에다, 비단에다가, 그러다 종이를 만들어내고, 계속 무언가를 적고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 그것이 바로 오늘의 책··· 인데··· 그런 책은 너무나 약하고 약하고 약해빠졌어요. 찢어지기도 쉽고, 물에도 취약하고 게다가 때로는 무겁기도 해서 가방에 두 권씩 넣기도 좀 그렇죠. 게다가 그거 종이라는 건 오래 되면, 쉽게 바스라지기도 하죠. 햇빛에 두면 표지 색은 금방 바래지고요. 그리고 오래된 종이에선 종이 벌레도 나와요. 종이라는 건, 2023년의 스마트폰에 비하면 너무나 연약하고 나약하고 가벼운 존재인 것 같아요. 믿을 수 없이, 이렇게 나약한 물건이라니. 오래도록 보관도 안 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종이책에 비하면 전자책은 그야말로 천하무적 같죠. 물에 젖지도 않고 천 권씩 담아도 무게가 전혀 늘어나지 않는 전자책은 거의 슈퍼맨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종이책이 존재하는 이유는··· 전자책이 있어도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직접 책장을 넘기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아마도 아직도 책에서 찾을 그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그리고, 금방 휘발되어 버리고 마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익숙한 저와 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80년대 생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책이 팔린다고 생각해봅니다.)
이 무슨 이상하고 진지한 논리의 흐름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책을 좋아하는 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난리가 나면 파주로 당장 달려갈 겁니다···. 이 모든 사건 사고의 배후,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기를 바라면서 ··· 그래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지구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책이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이번 레터를 마칠게요. 모두 무사히 여름 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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