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레터에 이어, 느린서재 북디자이너의 편지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3~4년 동안 편집디자인 일을 했다. 역시나 재능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난 열정은 가득한데 재능은 그저 그랬다. 이놈의 재능. 왜 나에게만 없을까. 그래도 해야지. 난 꼭 북디자이너가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회사에 그만둔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때, 실장님의 말이 기억이 난다.
"편집디자인 하다가 출판사로 이직하는 거, 경력 인정도 잘 안 되고 잘 안 뽑아. 네가 출판사로 가고 싶다고 해도 인맥이 있어?"
출판사 입사는 그 말처럼 정말로 힘들었다. 그래서 편집디자인 에이전시만 3~4년 다니게 된 것 같다. 돈은 벌어야 했으니 말이다. 계속 생각했다. 출판사 공채를 계속 알아봤지만, 경력 인정이 안 되서 절반으로 경력 기간이 깎이거나,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계속 출판사에 디자이너로 지원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한곳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이라니··· 시험이라니··· 뭐든 감사했다. 그곳에선 그동안의 내 경력도 인정해 주었고, 결국··· 합격 연락이 왔다. 그곳은 편집디자인 회사를 다닐 때 인쇄 감리를 갔던 인쇄소 근처에 있는 회사였다. 그 시절, 감리 시간이 남아서 대기할 때, 잔디밭을 걷다 네잎클로버를 찾아 소원을 빌었었다. "제발, 이 출판단지 내, 어디든 상관없으니 출판사에 입사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그 회사를 11년을 다녔고 올해 초, 퇴사를 했다.
첫 면접날, 디자인 책에서 득템했던 그 답변의 말을 문득문득 생각했었다. 아··· 10년. 곧 10년인데 난 내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한다,라는 게 가능한가? 어차피 '을'인데. 10년이 지났는데 난 나만의 디자인을 하고 있긴 한가. 재능 있고 디자인 잘하는 사람들은 넘쳐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 뛰기 같은 난 대체 무얼까. 11년 동안 나의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했고, 또 다른 내 꿈이었던 아이들을 어렵게 낳았다. 육아를 하며 일을 하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봐주셔서 일을 하며 몇 년을 버텨왔지만, 이젠 시어머님의 인생을 존중해드리기 위해 육아까지 전적으로 내가 맡게 되었다.
이젠 육아가 '주'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일은 '부'가 되었다. 나의 경우엔 재능이 없어 노력해야 하는 노력파인데, 점점 일할 시간이 줄어드니 불안증에 갇히기 시작했고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놈의 재능이 없다,라는 얘길 들어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며 열심히 해왔는데 이대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괴로웠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의 말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꿈은 못 이뤄내는 게 아니야. 안 이뤄내는 거지. 꿈은 계속 생각하면 언젠간 꼭 이루어져. 그게 빨리 오느냐, 느리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야.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계속 생각해. 그럼 그 방향의 길을 네가 가게 될 거야. 포기만 안 하면 되는 거야.'
이 말을 듣기 전, 그리고 들은 후에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는 꿈은 꾼 적이 없었다. 그들이 좀 부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그때도 지금도, 단지 북디자인을 하는 게 꿈일 뿐이니.
육아는 너무 힘들기도, 행복하기도 하다. '주'가 된 육아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것 같으면 갑작스러운 일들을 만들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장애물 뒤에 장애물 뒤에 장애물, 아무리 노력해도 끝없이 내 앞에 장애물들이 생겨버린다. 그래서 현타가 온 요즘, 저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첫 면접날 외근이 있다며 인사만 하고 가셨던 이사님. 외근을 다녀오고 뒤, 원래 뽑으려 했던 사람 말고, 마지막 면접자였던 나를 모두가 추천하기에,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회의 중 졸고 있는 나를 보며, 팀원들 모두에게 우린 사기를 당했다고 속상해하며 "웃픔"의 말을 하셨던 이사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