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동네 책방에 가는 게 저랑 엄마의 루틴이었어요.
토요일에 학교를 다녀오면 늘 엄마랑 목욕탕에 갔었어요. 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지요. 4교시만 하고 집에 오는 토요일. 그러고 보니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토요일에 학교를 갔네요. 아무튼 저, 당시 국민학생의 토요일 루틴은 이랬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점심 식사 후, 목욕탕에 가기,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동네 서점에 들리기. 목욕탕 다녀오는 길에 있던 작은 동네 서점에 항상 엄마랑 들렸던 기억이 아직도 제게 남아 있어요. 꼭 책을 사러 간 건 아니었어요. 책을 사러 가기도 했지만 어떤 책이 나왔는지 그냥 둘러보기 위해서 가기도 했지요.
작은 서점이었어요. 꼭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던 서점, 사방에는 책이 천장까지 가득가득 꽂혀 있었답니다. 토요일 오후, 작은 서점에 가면 그래도 서너 명 정도의 어른들이 책방에 서서 이런 저런 책들을 살펴보고 계셨어요. 그중 저만 제일 어린 국민학생이었네요. 베스트셀러 순위도 살펴보고 어떤 표지가 제일 예쁜가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비교해보기도 하고요. 한 달에 한 번은 제가 고른 책도 엄마는 사주셨지요. 군말 없이요. 저는 그때 토요일에 서점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거든요. 나름 글밥이 많은 책을 일찍부터 읽기 시작했던 국민학생이라 서점에 제가 읽지 않은 책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많이 흥분했던 것 같아요. 그 책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다 읽어냈다는 희열··· 그게 저에게는 엄청 큰 행복이었죠. 유튜브도 없던 시절, 티브이 채널은 오로지 세 개뿐이었던 그 시절, 일본 영화도 수입되지 않던 그 시절, 책만이 유일하고도 새로운 콘텐츠였죠. 아직도 아련한 90년대의 기억! 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책방 사장님이었어요. 새로 나온 책을 제일 먼저 보시는 분일 테니까요.
1인 출판을 하다 보니 작은 동네 책방들을 많이 찾아다니는 중이에요. 요즘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책방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참 쭈뼛거리기도 했지요. 느린서재라고 합니다, 이게 신간인데요··· 영화 속 미친 주인공들을 모아서··· 어쩌고저쩌고··· 읽어보시고 주문 꼭 해주세요···! 가끔은 느린서재 작가님들이 직접 책방에 가셔서 영업도 해주시고 그런답니다. 동네 책방에 느린서재 책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보이는 그날까지, 책방 영업은 계속됩니다.
얼마 전 일산의 미스터 버티고 책방에 갔었어요. 아직 느린서재 책이 매대에 없기에, 또 책을 건네고 돌아왔답니다. 지금쯤, 매대에 느린서재 책들이 누워 있으려나요···?
그리고 느린서재의 든든한 응원군인 또 하나의 책방을 여기 소개할게요. 일산 밤리단길에 있는, 아직 간판을 달지 않은 <건우네 책방> 책방지기 님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책방 by 건우네 책방 책방지기
안녕하세요, <건우네 책방>입니다.
<건우네 책방>은 일산 정발산동에 위치한 8평 남짓의 자그마한 서점입니다.
독립 출판물을 비롯하여 유명한 책, 안 유명한 책 가리지 않고 세상 어딘가를 비출 나름의 빛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면 소중히, 아주 소중히 들여놓고 있습니다. 여느 책방과 같이 책모임도 하고요, 아이들 글쓰기 수업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드라마톡(Talk) 모임이나 가끔 갑자기 모여 라면을 먹는 <라면먹고 갈래?> 모임 등 소소하고 재미있는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밤에는 종종 ‘건우네 포차’로 변신도 합니다.
<건우네 책방>은 24시간 영업 중입니다. 새벽 2시에 책이 읽고 싶어질 수 있잖아요. 잠 못 드는 어느 밤, 갈 곳은 편의점이나 24시간 무인카페뿐, 불닭볶음면으로도 아·아로도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 순간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아늑한 책방이 있다면···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실천에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책방을 시작했을까
책방을 열고 난 뒤 이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길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하나씩 다 잃어가고 급기야 제 자신을 잃어갈 때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내기로 마음먹었고 그땐 이미 아무도 말릴 수 없었죠. 많은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참 용기 있다고···. 역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나 벼랑 끝이었기에 밴댕이도 울고 갈 소심한 제가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왜 책방을 열었는지 저도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일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간혹 손님들이 남겨주신 메모를 읽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끼며 저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려고 책방했구나! 글쎄요, 한마디로 답하긴 아직 어렵네요.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내 자리를 찾고 싶어서, 책이 좋아서, 어쩌면 외로워서··· (여기 어딘가에 돈 벌고 싶어서도 있을까요?)
돈, 벌고 싶죠. 되도록 많이! 하지만 제 안에 돈보다 더 간절한 것이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갖기 위해 책방을 열고 몸부림치는 중이고요, 하지만 몸부림치는 와중에 계속 생각은 납니다. 아, 돈을 벌긴 벌어야 하는데··· 책방 월세 내야 하는데···
to be continued···
다음 레터에서 <건우네 책방>이 월세 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는 몇 달 전에 느린서재 제작비 마련을 위한 알바를 하나 했는데 돈을 떼이고 말았답니다. 출판사 대표지만 돈 떼인 이야기도 다음 레터에서 이어집니다.
다음 레터에서 우리 또 만나요!😉
|